진심이라는 자리

진심의본질

by 이 경화


하루를 깨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진심은 항상 외면 받아야 하는 걸까. 마치 그늘 모퉁이에서 간신히 살려고 고개를 쳐 든 풀 한 포기 같아서 진심이 가여워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의 가장 연약하고 아릿한 그 진심이라는 존엄. 그동안 살아오며 몇 번을 주고 또 몇 번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날에는 자라지 못한 내 진심이 가엾게 보이기도 하고 또는 꺼내 준 진심이 너무 다 여서 정작 내 자리에는 몇 톨 안 남아 있는 그 허기짐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진심을 꺼내 줄 때마다 내 자리는 움푹움푹 패여갔다. 그래도 그런 진심을 퍼 주다가 아니 퍼주기만 한 날도 나는 또 용기가 있어야 했다. 상처를 받아도 나는 삶에서 절대 그 상처에 무너지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사실 그 딱정이로 다음 상처도 예견되었고 또 상처가 나도 언젠가는 그 상처가 나으리라는 희망으로 살고 있다. 상처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진심을 꺼내 주기에 그간 바빴다.


믿느라 그 동안은 참 행복했고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저 그 곳에 진심이 있으면 그 존재만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아도 정성스럽게 손편지를 꼭꼭 눌러쓰고 돌맹이 하나를 얹고 돌아서듯 늘 진심을 꺼내 주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나를 다독이며 잠을 청해야 했다. 그러나 그 밤이 있어서 고맙다.


진심과 걱정을 전했던 상대에게 어느 날 이런 소리를 들었다. "왜 내 걱정을 하세요 나는 되었으니 본인 걱정이나 하세요." 그날 나는 무너져 펑펑 울었다. 그런데 내가 운 것은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진심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 슬퍼서 울었다. 그간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으면 이렇게 진심을 꺼내 준 사람에게 비뚤어진 언어로 대답해야 했을까.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아파서 울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시간들은 다른 이의 진심을 밀어낼 만큼 얼마나 딱딱하게 굳어온 걸까. 나의 진심은 한순간에 무력해졌고 마음속에 꼭꼭 눌러 담아 전했던 걱정과 애정은 그 말 한 줄에 부서져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다시 다짐하듯 마음을 추슬렀다. 내가 준 진심을 후회하지 않기로. 그래도 나는 진심으로 살기로.


스스로 다독이면서 스스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 웅덩이 같은 진심의 자리가 크게 공명되는 것을 느끼며 살아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것이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단단해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했고 축복을 되뇌였다.


사랑은 소유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진심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곧 인간 존재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일이다. 진심은 감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존재의 중심에서 태어나는 진동이다. 우리는 때때로 진심을 단지 마음의 따뜻함 배려의 표현 정도로 가볍게 여기지만 실상 진심은 인간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흔적일지도 모른다.


진심은 언어보다 먼저 태어난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세계를 향해 열릴 때 우리는 그것을 진심이라고 부른다. 이 진심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든 낯선 이에게든 심지어 이미 떠난 존재에게조차 진심은 도달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심의 절대성과 철학적 존엄이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 존재를 나-너의 관계로 설명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만남은 나-그것의 도구적 관계를 넘어 나-너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인간은 존재로서 깊이를 얻는다. 진심은 그 나-너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다. 나는 너를 소유하거나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를 그 자체로 마주하려는 마음에서 진심이 피어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 진심을 점점 더 위태롭게 만든다. 빠른 속도 계산된 관계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분류하고 기능화하며 진심 없는 친절을 기술로 착각한다. 진심은 때때로 무기력해 보이고 순진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기력함 속에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의 뿌리가 있다.


나는 진심이 외면당하는 시대를 산다. 진심은 때로 조롱당하고 때로 왜곡되고 때로 아예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진심을 택한다. 왜냐하면 진심은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끝내 지키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이고 진심은 바로 그 정체성의 근거다.


진심을 주는 일은 언제나 상처를 동반한다. 무언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 아니어도 그것이 외면당하거나 악의적으로 해석될 때 우리는 쉽게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철학은 우리를 붙든다. 진심은 그 자체로 완결된 가치다. 되돌아오는 응답이 없어도 진심은 이미 하나의 행위로서 세계 안에 의미를 새긴다.


니체는 사랑을 존재 그 자체를 기뻐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 진심이란 바로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 소유하려 하지 않고 머무르게 하지 않고 그저 있음에 감사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적지만 그런 존재가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진심은 반복의 윤리다. 한 번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건네는 용기다. 이 반복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고결한 인간의 실천이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선한 삶이란 결국 타인에게 진심으로 응답하는 삶이며 그 삶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진심이 되는 길이다.


나는 이제 진심을 꺼낸다는 말을 나를 살아낸다는 말로 바꾸고 싶다. 진심이란 곧 내가 살아있는 증거이고 내가 누군가를 향해 여전히 열린 사람이라는 신호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등불이고 바람 부는 언덕에서 홀로 불을 지키는 사람의 손끝 같은 것이다.


진심은 종교이기도 하다. 그것은 믿음 없이는 지속될 수 없고 기대 없이 흐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떤 대상에게 어떤 관계에게 어떤 순간에게 스스로의 진심을 바치며 살아간다. 그건 기도의 형태로 말 없는 헌신의 형태로 또는 단 한 번의 눈맞춤으로 나타난다.


나는 진심을 삶의 미학으로 여긴다. 화려하지 않지만 투명하고 묵직한 아름다움. 그것은 말보다 고요하고 감정보다 깊으며 논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이다. 그래서 진심을 꺼내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날카롭고 누구보다도 따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보다도 용감하다.


그러므로 진심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두려움 속에서도 다가가는 것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다 주고도 아무것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고독. 그 모든 것 위를 조용히 건너는 발걸음.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결국 나라는 사람의 형태가 되어간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꺼낼 준비를 한다. 어쩌면 외면당할지도 모르는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그래도 너는 참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문장을 언젠가 전하기 위해. 그것이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남기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단단한 흔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