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돌아오는 일

by 이 경화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다.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실낱처럼 그 의미가 어렴풋이 다가온다. 세월은 내게 가장 진실한 선생이었다. 나는 부모님 없이 자라 이모의 손에서 컸다. 이모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오셨고 우리 집의 가훈은 언제나 “어디 가서 부모 없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였다. 이모는 나를 아주 엄격하게 키우셨다. 사랑보다는 규율이 앞섰고 온기보다는 책임이 우선되었다. 아이의 숨결에도 예의가 필요했고 슬픔조차 조용히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이모의 엄격함과 달리 내 안에는 늘 자유로움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공상과 상상을 즐겼고 눈을 감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창공을 날고 바다 끝 어딘가 낯선 땅에 착지하던 꿈. 나는 지금도 그런 꿈을 꾼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서 내가 원하는 곳에 착지하는 꿈을.


그 자유로움은 내 저 깊은 내면에서 종유석처럼 천천히 자라났고 어느 날 문득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인생 별거 없다는 걸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답일지도 모른다는 걸 몸으로 깨우치며 버텨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책임과 현실이라는 두 축에 나를 묶어야 했고 이성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자유를 억눌러야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더는 외칠 수 없는 나이였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또 다른 책임이 따르는 법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을 놓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고 겸허히 나를 관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족히 오십 년이 걸렸다. 이제야 나는 조금씩 안다. 진짜 자유는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바람이 일게 하는 것임을.


나는 더 이상 누구의 시선을 살피며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에게서 시작해 나에게로 돌아오는 삶. 그대로의 내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바람이 머릿결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듯 이슬이 풀잎 위를 따라 또르르 굴러 떨어지듯 나는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자유스럽게 살고 싶다.


사람들은 종종 말하곤 한다. 혼자 사니 자유롭겠다. 그러나 그 말 속엔 참 많은 오해가 들어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단순히 얽매이지 않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더 철저하게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삶이다.


누가 대신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흐트러진 공간을 정리해줄 이도 없다. 내가 아프면 나 혼자 알아서 병원에 가야 하고 내가 늦잠을 자면 나 혼자 하루를 망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나를 붙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혼자의 자유는 결코 방종이나 무질서가 아니고 되려 더 조용한 통제와 더 단단한 질서로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과 자유롭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자유는 선택의 여유가 아니라 선택 이후에 감당해야 하는 내 삶의 태도다. 그건 어쩌면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처럼 혼자서도 단정하려 애쓰는 마음이다. 자유롭기 위해 더 부지런해야 하고 더 자주 나 자신을 다독이고 붙들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자유롭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어떤 날은 외로움을 견디며 밥을 지어야 한다.


나는 처음에는 그걸 몰랐다. 자유가 나를 가볍게 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유는 오히려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혼자의 공간에서 흘러간 시간은 어지럽고 느슨했고 나는 나를 자꾸만 방치했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데 나는 자꾸만 나를 탓했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에서 나를 깨우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건 자유가 아니야. 그 다그침은 처음엔 낯설고 차가웠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 반복되는 그 자기 다그침이 점점 몸에 붙기 시작했다.


밥을 차려 먹어야 해. 방을 정돈해야 해. 이불을 털고 하루를 새로 열어야 해. 그 사소하고도 지루한 습관들이 나를 다시 살게 했다. 그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향해 다그치며 배우는 생의 윤리였고 그 다그침이 몸에 스며들자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워졌다.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자유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그래도 해내는 힘이었다. 아무도 안 본다고 흐트러지지 않고 아무도 모른다고 대충하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자유였다. 자기와의 약속을 매일 지켜내는 일. 나는 그걸 혼자 살면서 배웠다. 혼자 있는 공간은 내가 나를 외면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자유였지만 반대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온전한 자유이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스스로 밥을 해 먹고 창문을 열어 햇살을 들이고 조용히 차를 끓여 마셨던 그 오후. 그날 나는 정말 자유로웠다. 누가 뭘 해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정하게 돌봤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살아 있었다.


지금 나는 묻는다.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내가 세상에 속박받지 않을 때. 아니다. 내가 나와 화해할 때. 그때 비로소 자유는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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