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여전히 묻고 있다.

by 이 경화


"스스로 깨달아야만 진짜 말이 된다"


는 말이 있다. 우리 삶의 진정한 이해와 지혜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통과 노력 그리고 탐구를 통해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은 방향일 수는 있지만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그 길을 실제로 걸어본 적이 없다면 그 말은 아직도 내 것이 아니다. 타인의 말을 맹신하거나 겉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결코 온전한 앎이 되지 못한다. 지식은 문장으로 축적되지만 지혜는 침묵과 상처 위에 내려앉는다.


나는 그걸 오래 돌아서야 알았다. 말은 들을 수 있지만 그 진실을 살아내는 건 오직 내 몫이었다. 책에게 감사를 표하는 건, 그 책이 내 안의 침묵을 흔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이 진실되었다면, 나는 그 시간을 기억한다. 이런 사소한 진동들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남이 준 말이 아니라 내가 길어올린 문장들이 나를 구성했다.


책을 읽고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이 내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때, 나는 비로소 자유로웠다. 생각이 흐르고 머문 것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나는 더 이상 그것에 붙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스스로 언어를 고르게 되었고, 그 언어들이 내 삶의 길을 비추었다. 나는 그 언어들 때문에 비로소 어떤 순간들을 나의 것으로 깨닫게 되었고, 그 말들이 내 안에서 울리고 스며들며 어느 순간엔 내 삶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 깨달음은 이상하리만치 무겁지 않았다. 책임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가볍고 따뜻했고 조금은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아, 나는 이걸 몰랐구나. 아, 이런 말이 내 삶에도 가능했구나. 그 가벼움이 나를 살게 했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 스스로만 알고 있어도 되는 진실. 나는 그 말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다듬고 품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건 어떤 선언도 아니었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문장도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 조용히 빛나고 있는 하나의 작은 등불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나의 언어를 정갈하게 걷어낸다. 수없이 쌓인 문장들 위에서 내려와 조용한 삶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더 이상 말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안다. 내가 택한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직한 고백이다. 그 고백은 화려하지 않지만 살아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울림이 된다. 문장이 되지 못한 감정들마저도 조용히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들까지도 내 삶의 일부였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나는 점점 가벼워졌고, 놀랍게도 그 가벼움 속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떤 말은 너무 늦게 도착한다. 한 사람을 위한 조언이나 나를 위한 충고가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엔 반박할 이유부터 찾았고 그 말이 날 향한 애정이 아닌, 간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고 삶이 다시 그와 비슷한 풍경을 내 앞에 데려다놓았을 때 나는 조용히 무릎을 탁 쳤다. 아, 이러한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시려고 그런 말을 해주셨던 거였구나. 말이 상처였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더 아팠다. 나를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건넨 말이었기에 그 말은 내 가장 약한 부위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그 말 하나가 나를 덮어버리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배웠고, 한 문장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어가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약한 존재라는 걸 안 건 사실 몇 해 안 된다. 나는 늘 말로 나를 무장했고, 말로 나를 설명하고, 말로 상처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상처는 말 너머에서 다가왔고, 나는 그때마다 더 많은 말을 덧붙이며 자신을 방어하려 애썼다. 그러다 어느 날, 말이 나를 구하지 못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말이 많을수록 오히려 내가 작아지고, 말로 방어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침묵이 내 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침묵은 나를 숨기지 않았다. 그저 나를 감쌌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감정, 굳이 말로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고요. 그것은 말보다 훨씬 강했고, 말보다 훨씬 따뜻했다.


모든 깨달음과 침묵과 언어는 결국 실존이라는 가능성의 명제 안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실존하기 위해 말하고, 실존하기 위해 침묵하며, 실존하기 위해 깨닫는다. 그 모든 여정은 나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인간은 존재를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고, 미래로 던져진 삶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과거를 짊어진 존재다. 인간은 현재란 시간을 산다기보다 끊임없이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 대한 실존을 부재시키고 만다. 그러므로 시간은 우리에게 환상이며 판타지에 불과하다. 내일은 겪어보지 않은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허구다. 우리는 환상과 허구의 어디쯤 존재하는 걸까.


"나는 살면서 여전히 묻고 있다"


. 그 질문은 대답을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계속된다. 이 단 하나의 문장, 나는 살면서 여전히 묻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나의 실재를 증명한다. 나는 묻고, 묻는 존재로 살아가고, 그 살아감 안에서 나는 실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