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흐르는 삶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실려온 무수한 인연들로 만들어진 강물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쯤은 나라는 존재의 경계가 흐려질 때가 있다. 이건 내 탓인가, 누군가의 말 때문인가. 사실 그 경계는 처음부터 뚜렷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수한 인연들이 나를 밀고 당기고 떠밀고 감싸준 덕분이라는 걸 요즘은 자주 떠올린다.
나라는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떨어진 별 하나처럼 생겨난 것이 아니다.
‘연기’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이 연기처럼 흐릿하고 사라지는 허무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는 오히려 무한한 연결과 충만의 원리였다. 모든 존재는 고립되어 있지 않고 모든 감정은 혼자 오는 법이 없으며 내가 웃을 수 있었던 날에도 그 웃음 뒤에는 누군가의 손길과 기다림과 눈물이 함께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찻잔에 담긴 따뜻함은 찻잎을 재배한 농부의 땀과 차를 만든 사람의 정성과 내가 그 차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의 웃음이 다 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서로의 일부가 된다.
나는 나를 키워준 수많은 말과 눈빛을 기억한다. 어느 날은 길가의 꽃 한 송이였고 어느 날은 무심코 건넨 ‘수고했어요’라는 인사였고 어느 날은 한밤중에도 답장을 보내주던 친구의 카톡이었고 어느 날은 책 속 문장 하나였다. 그 모든 것들이 나라는 마음의 결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 하나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나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건 내가 지금 이 모습으로 있기까지 너무 많은 ‘그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두는 스쳐간 인연이 아니라 나를 존재하게 해준 뿌리였다.
이따금 슬픔이 찾아와 모든 것을 끊어내고 싶을 때에도 나는 이 연기의 원리를 떠올린다. 끊어낼 수 없는 연결. 잊을 수 없는 고마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붙들고 있다. 나를 버티게 만든 것도 사람이고 나를 무너지게 한 것도 사람이었지만 결국 나를 일으킨 것도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조건’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너의 한마디가 나의 하루가 되고 나의 웃음이 너의 용기가 되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 속에서 조용히 작용하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서로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내가 지닌 고독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면 그건 누군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내려 주었기 때문이고 어느 날 당신의 눈빛이 맑아졌다면 그건 누군가 당신의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 놓고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혼자인 듯 보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고 나 혼자라고 믿는 순간에도 수많은 관계의 선들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걸 잊지 않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연결이 되고 싶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이 다시 용기 낼 수 있게 하는 한 방울의 응원으로. 한 사람의 내일에 작은 조건이 되어 그의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 말은 뻔한 진리가 아니라 매일을 살아내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연기’란 결국 이 말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