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그리고살아내다
살림은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찰 안에서 스님들이 공양을 준비하고 시주받은 재화를 정리하고 공동체의 흐름을 조율하는 그 모든 일을 통칭하여 살림이라 부른다. 겉으로는 단순히 물건을 아끼고 배분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절 안의 하루를 흐르게 하는 고요한 중심이며 말하자면 수행과 수행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모두가 그것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누군가는 법문을 하고 누군가는 참선을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물소리와 쌀 씻는 손길로 생명의 리듬을 맞춘다.
혼자 살수록 궁색하게 살기 싫어서 나는 요일을 정해서 정해진 살림을 한지 오래되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냉장고를 정리해 두고 화요일에는 장을 보고 수요일에는 빨래를 종류별로 구분해서 세탁을 해 두고 목요일에는 화장실 청소와 재활용 버리기를 금요일에는 옷을 정리하거나 그릇을 정리하고 토요일에는 이불과 벼갯닛을 교체하고 일요일엔 다음 주의 계획을 세워둔다. 때론 바쁜 일정으로 순서가 뒤로 밀리는 날도 있고 내가 게으름이 올라와 순서대로 되지 않는 날도 종종 있지만 나는 이 큰 틀 안에서 내 살림을 돌본다. 그러나 나도 이처럼 되기까지 수십 년이나 걸렸다. 하나의 습관이 몸에 배이게 하는 데에는 스므하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떤 것도 생각과 말에는 머물 수 있도록 자신을 매료시킬 수 있지만 몸으로 실천으로 꾸준하게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꾸준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가 항상 대치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다. 그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려면 정말 백 가지도 더 넘게 이유를 가져다 붙이면서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는 거창한 것에서 항상 삶의 행복을 논한다. 성공과 부 그리고 명예. 그러나 어쩌면 삶의 지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소소한 시간에 들어있다고 믿는다. 말끔히 치우는 청소에서 보기 좋게 진열된 찬장에서 언제든 누가 와도 먹을 것이 있는 냉장고에서 행복한 순간이 기다린다.
그 스므하루 동안 자신의 부정을 견디면 아름답게 내 몸이 먼저 그것들을 기억하는 상태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나는 점점 더 살림이 나를 바꾸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흐트러진 물건을 보면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그것이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의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넘어진 채로 놓인 컵 하나에 무심히 말 거는 법을 배우고 닫히지 않은 서랍을 다정히 닫으며 나도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그러니까 살림은 결국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말보다 조용하게 손보다 깊이 있게.
나는 이 살림이라는 조용한 행위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있다. 나를 무너뜨린 기억들과 나를 떠났던 사람들과 아직도 내 마음을 흔들고 가는 존재들과. 그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 상처를 그대로 두고 살아가기에는 내 안의 생명이 너무 깊고 단단했다. 그래서 나는 그 흔적을 정리하지 않고 다만 천천히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살림을 한다.
살림은 그렇게 나를 더 넓고 깊은 존재로 이끌었다. 감정의 파편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어느 날은 내가 진심으로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내 삶에 들어왔고 나는 그 아이를 위해 물을 따르고 방의 온도를 맞췄다. 누군가를 살피는 이 조용한 손길을 통해 나는 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다시 배웠고 인간관계에서 내 자리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살림은 단지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윤리이며 시간과 관계를 잇는 방식이며 내면의 무게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길 위에서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살림이란 내면의 기울어진 그릇들을 다듬어 바로 세우고 어지럽혀진 욕망들을 치워내며 고요 안에 머물게 하고 좀 더 환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의 먼지를 닦는 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안에 나는 욕실 바닥 수채구멍에 고인 머리카락을 조용히 모아 치우며 오늘의 나를 정리한다. 누구도 보지 않는 그 작은 동작이 나를 지키는 마지막 의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