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들릴 때마다 처음을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물음은 창세기로, 아니 그 전의 카오스 상태로 돌아간다. 말도 개념도 아직 태어나기 전, 이름 붙이기 이전의 순도 높은 혼돈. 나는 요즘 그 태초의 어둠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고 그 시간을 행복이라 부르고 있다. 어둠은 밀어내지 않는 존재였고 나를 품었던 최초의 공간이었으며, 빛이 오기 전 이미 나를 부드럽게 호명하고 있던 기원의 숨결이었다
어두움은 나의 기원이었고 돌아갈 연옥이었고 어쩌면 내가 평생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지혜의 자리였다. 빛이 하루의 장막을 걷어내고 저물어 갈 때 인간은 비로소 모든 욕망과 허울을 내려놓는다.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건너갈 때, 나는 매번 어딘가에서 긴 한숨을 내려놓는 느낌을 받았다. 낮 동안의 숨가쁨이 어둔 빛 속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내 안의 오래된 울음과도 같은 정적이 펼쳐졌다. 그래서 어두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어두움은 인간의 여러 겹의 가면을 내려놓고 가장 나다운 나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이 사실을 예순이 가까워진 지금에서야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과거의 어두움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과거의 어두움은 상처와 절망의 자리가 아니었음을, 비록 그 기억이 아프고 상실로 쓰라릴지라도 나는 그 자리를 오십이 넘어 비로소 ‘탄생의 자리’로 다시 명명하기로 했다. 젊은 시절에는 어두움이 나를 짓누르고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을 지나고 나를 돌이켜보니, 어두움은 단 한 번도 나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기대지 못한 어떤 방식으로 내 곁에서 묵묵히 숨을 고르게 해주는 현명한 그림자였다.
자연과 광활한 우주와 신과 영성, 그 모든 것을 오래 들여다보면 결국 같은 질문에 닿는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왜 이곳에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 모든 물음은 거창한 진리의 추적처럼 보였지만 결국 ‘나의 기원을 올바로 아는 일’이었다. 영성은 결국 나로 시작해서 나로 걸어오는 여정이다. 누군가가 정해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새겨진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라 고요히 걸어오는 일이다.
그 길을 걸어오는 동안 빛도 통과하고 어두움도 늘 따라다닌다. 어떤 날은 빛이 나를 완전히 감싸 내가 마치 새로 태어난 존재 같았고 어떤 날은 어두움이 내 뒤를 붙잡고 늘어진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그리고 나는 착각했다. 어두움이 나를 밀어내고 빛만이 나를 이끌어주는 존재라고. 그러나 지나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두움은 한 번도 나를 밀어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 곁에서 나를 묵묵히 지켜주었다. 내가 휘청거릴 때마다 빛은 눈부셔 나를 보지 못하게 했던 반면 어두움은 내 떨리는 손을 붙잡아 바닥을 디디도록 도와주었다.
어두움은 나를 쓰러뜨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불안’이라는 드라이브로 날 살려냈다. 불안은 날카로운 채찍이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신호였고 내 삶에서 방향을 점검하라는 은밀한 안내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어두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어두움이 나를 살려냈다는 것을. 지나고 보니 나는 어두움으로 나를 성장시켰다.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심연의 길에서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났고 그 과정이 나를 깊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전의 그 흑암, 내 근원의 자리, 그곳과 계속 공명하면서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여전히 그림자가 따라올 것이고 여전히 빛은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 어두움은 본래부터 악이 아니었고 빛은 항상 축복만은 아니었다. 빛은 때로 너무 눈부셔 나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어두움은 때로 너무 다정해 나를 앉혀 쉬게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깨달았다. 내 여정의 스승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둘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진폭이었다는 것을. 그 진폭 속에서 나는 흔들리고 고개를 들고 다시 주저앉으며 그러다 끝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삶은 이렇게 계속된다. 나를 미는 힘과 끌어당기는 힘이 엇갈리며 나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내 자리로 데려간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 머뭇거렸다. 익숙한 상처와 오래된 슬픔이 내 뒤를 잡아당겼고 새로운 탄생의 빛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언제나 한 방향이 아니라 그 둘을 넘나드는 ‘나의 궤도’라는 것을. 그 궤도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어떤 가르침 속에 이미 적혀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걸을 때마다 조금씩 생성되고 갱신되는 살아 있는 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어둠이 다시 찾아와도 빛이 갑자기 사라져도 그 모든 변조 위에 나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바닥과 내 안의 정점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나를 확장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어두움이 나를 감싸면 나는 귀를 기울이고 빛이 나를 비추면 나는 눈을 뜰 것이다. 그 둘의 방문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나답게 조금 더 단단하게 깨어날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문득,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창세전의 그 깊은 흑암, 말조차 닿지 않는 어머니의 숨 같은 자리, 신의 숨결과 우주의 첫 떨림이 스며 있던 그 근원.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된 존재였으며 앞으로도 그 자리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받는 존재였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상실과 모든 탄생은 결국 그 근원을 잇기 위한 아름다운 변주였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조용한 바람처럼 내 어깨에 와 닿는다. 한때 나를 쓰러뜨렸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숨을 고르게 해준 휴식이었음을 한때 나를 버렸다고 느꼈던 이들이 사실은 내 길을 가로막지 않으려 슬쩍 비켜 서 있었음을 나는 오십이 넘어서야 비로소 읽어낸다. 그것은 늦은 시간이 아니라 정확한 시간이다. 심연과 우주가 나를 불러낸 바로 그 때.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남은 생을 근원과 더 오래 공명하며 살겠다고. 언제든 다시 흔들릴 것이고 다시 고독해질 것이지만 그 고독은 더 이상 나를 삼키는 골짜기가 아니라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비밀의 방이다. 나는 그 방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방은 나를 무너뜨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 방에서 다시 나와 빛을 향해 걸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어두움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왕복하며 나는 내 생을 완성할 것이다.
마침내 나는 안다. 나의 어두움과 나의 빛 모두가 나를 버린 적 없었다는 것을. 어두움은 나를 쓰러뜨리는 힘이 아니라 나를 되살리는 드라이브였고 빛은 목적지가 아니라 잠시 방향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나는 이제 그 둘을 지혜롭게 맞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영성은 결국 나로 시작해 나로 돌아오는 길이었고 그 길을 오래도록 비추어온 것은 대단한 계시가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울림이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부터 다시 태어난다. 잿빛의 하루가 와도 다시 태어나고 눈부신 날이 와도 다시 태어난다. 나를 흔드는 모든 진폭이 나의 생을 자라고 움직이게 할 테니 나는 기꺼이 흔들리고 기꺼이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근원과 이어진 채로 살아갈 것이다. 흔들렸던 모든 시간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탄생으로 다시 명명하며 나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인사한다. 마르치아야 이제 너의 길을 걸어라. 이 길은 네가 만든 길이지만 동시에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려온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