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은 삶은 축복이다. 이 말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꺼낸 문장이 아니다. 살아오며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루를 마치고 몸을 내려놓을 자리가 있다는 것, 생각을 잠시 멈추어 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신 앞에 앉을 수 있는 고요가 있다는 사실이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지를.
밤이 찾아오면 몸을 쉬게 할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로운가. 하루는 언제나 몸부터 먼저 통과한다. 생각보다 앞서 지치고 마음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이 몸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거의 듣지 않았다. 피곤함은 의지로 넘길 수 있다고 믿었고 통증은 잠시 참으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몸을 눕힐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하루를 무사히 끝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는 오늘을 잘 살았는지 묻지 않는다. 실수했는지 미뤄둔 것이 있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몸이 오늘 하루를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나는 그곳에서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 몸이 먼저 쉬는 것을 허락할 뿐이다. 이 단순한 허락이 이 나이에 와서야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 그 또한 내겐 감사다. 생각은 쉬지 않는다. 몸을 눕힌다고 해서 생각까지 함께 눕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요해질수록 생각은 더 큰 소리로 몰려온다. 지나간 말들 하지 못한 선택들 옳았다고 믿었던 판단들 그렇지 못했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 자리는 이 모든 것을 몰아내는 곳이 아니다. 생각이 결론을 내지 않아도 괜찮고 질문이 답을 찾지 못한 채 며칠을 머물러도 괜찮은 자리다. 나는 그곳에서 생각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흩어지지 않게 잠시 눕혀 둘 뿐이다.
휘몰아치는 생각을 정리하고 들벅이는 마음을 다독일 자리가 있어 나는 풍요롭다. 풍요롭다는 말이 무언가를 많이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배웠다. 이 풍요는 비워둘 수 있는 여백에서 온다. 옳았다고 믿었던 생각들도 그렇지 못했다고 여겼던 생각들도 모두 제자리를 찾고 가닥을 잡아 간다. 그곳에서는 생각들이 서로를 재단하지 않는다. 과거의 판단은 현재의 나에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스스로 이동하는 것을 지켜본다. 어떤 생각은 중심에서 물러나고 어떤 생각은 오래 남아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 과정에 나의 의지가 전부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제는 편안하다.
하루를 시작할 때 나는 조용한 자리에서 신과 만난다. 크게 기도하지도 말을 길게 꺼내지도 않는다. 그저 앉아 어제의 나를 내려놓고 오늘의 나를 아직 부르지 않은 채 숨을 고른다. 그곳에서 신은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라고도 더 버티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살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침묵으로 확인해 줄 뿐이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보다 어떤 태도로 하루를 건너갈지를 떠올린다.
이런 자리들을 갖기까지 나는 지난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다. 의도하지 않은 선택들 예상하지 못한 방향들 수없이 흔들리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 위에 지금의 삶이 놓여 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 견뎌온 삶의 결과라는 것을. 이 자리가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를 흩어지지 않게 붙들어 준다는 것을.
가끔은 문 앞까지 와서 노크를 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사람을 떠올린다. 문고리를 잡지 않았고 문을 열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분명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던 사람. 안에서 들리는 기척을 들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숨소리만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그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탓하지도 못하고 돌아섰다는 사실을 붙잡지도 못한다. 다만 문 앞에 남았을 망설임의 온도를 생각한다. 노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노크해도 괜찮은지 끝내 확신하지 못했던 마음. 그 조심스러움이 관계를 지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밖에 남겨두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래서 그가 돌아선 자리 앞에서 오래 서 본다. 열리지 않은 문보다 닫히지 않았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이 아직도 어딘가에서 나를 향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을 것 같아서.
오십이 넘은 삶은 축복이다. 속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몸을 눕히고 생각을 눕히고 신 앞에 앉을 자리를 스스로 마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들 사이를 오가며 오늘도 하루를 산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동선으로.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에게도 이런 자리가 있는지 가만히 살핀다. 몸을 뉘일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생각이 쉬어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신과 마주 앉을 고요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한다. 나는 문을 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 앞에 서서 노크한다. 그것이 이제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