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 곶자왈
나는 작년부터 65만 평의 곶자왈 문턱에 기대어 산다. 나는 그전까지 기대어 산다는 의미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곶자왈 숲의 모든 생물과 생명의 기운에 기대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곳으로 삶을 옮기고서야 알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곶자왈 숲을 내려다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만한 아침을 맞는다. 얼마나 그동안 많은 욕심이 철벅거리며 살았는지 이곳 곶자왈에 삶을 옮기고서야 비로소 보인다. 어느 날 나무가 벗겨진 곳에 나도 모르게 내 상처를 기대었고 그 상처로부터 나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한 날이었다. 상처에 몸을 기대는 순간 내 상처와 나무의 상처가 섞이는 경험을 했고 나무의 상처에 온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보다 충만한 회복이라는 감각을 얻었다.
그러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죽어 있는 노루를 보았다. 나는 왜 방금 전까지 생명과 회복을 생각했는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죽음을 보게 되는 걸까. 발목까지 차오른 그 의문을 안고 노루 가까이 다가갔다. 목은 꺾여 있었고 벌써 들개들이 살을 파먹어 뼈가 드러나 있었다. 나는 노루의 죽음을 그날 처음 본 터라 이성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내 어느 곳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자리에서 일어난 생명과 죽음의 환원만큼은 침착하리만큼 냉정하게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곁의 나무들도 우스스 우스스 곡을 했다. 나는 그 곡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머리를 숙였다. 인간인 내가 이토록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미안함이 밀려왔다. 목이 꺾여 있는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는 혹시 인간이 숲에 놓은 올무나 철사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화경이 스쳐 갔다. 뛰어오르다 그 철사에 걸려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날 선 생각과 숲의 곡소리를 마음 깊이 넣었다.
인간의 무한한 욕심이라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신이 손가락을 열 개 발가락을 열 개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십진법은 셀 수 있을 만큼만 가지라는 신의 보호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만 가지라는 신의 보호 그러다 모자라면 발가락을 가져와 세어도 좋다는 균형 감각.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너무 많은 욕심 속에 살고 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삶이 어느 날 공허로 무너지는 것을 나는 종종 본다. 많이 가진 것이 문명이라면 오히려 가지지 않는 삶이 더 충만하고 풍요롭다. 숲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제자리에서 서로를 도우며 생장하고 죽음으로 다른 생명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인간이라는 미물이 한낱 가질 수 없는 그 충만한 소유.
노루의 죽음을 본 이후 나는 삶에서 말이 더 덜어졌다. 말이 줄어든 뒤 처음 맞은 밤은 이상할 만큼 길었다. 곶자왈은 해가 지자마자 빠르게 어두워졌고 어둠은 설명 없이 내려앉았다. 집 밖으로 나와 한동안 서 있었다. 무엇을 보려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생각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서 있는 몸이 밤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별이 하나씩 나타났다. 갑자기 쏟아진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들이 제 순서대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별을 세지 않았다. 세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며 가늠하던 습관이 그날 밤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별은 손의 영역이 아니었고 생각의 영역도 아니었다. 다만 고개를 들고 있는 동안 함께 있는 존재들이었다.
숲에서는 밤에도 소리가 났다. 낮보다 더 분명한 소리였다. 바람이 멈추면 멈춘 대로 고요했고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분명했다. 그 사이에서 별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장 존재감이 컸다. 말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그 밤 이후로 나는 별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 의미를 붙이지 않고 소유하려 하지 않고 다만 그 앞에 서는 법을 배웠다. 별은 여전히 셀 수 없었고 그래서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졌다. 셀 수 없는 것 앞에서는 욕심도 방향을 잃었다. 숲과 별 사이에서 나는 조금 느슨해졌고 그 느슨함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숲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였다. 노루의 자리도 밤의 별도 말없이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창을 열고 곶자왈을 내려다보았다. 어제의 죽음도 밤의 고요도 아침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다만 공기는 맑았고 숲은 제 속도로 숨 쉬고 있었다. 삶은 늘 이렇게 아무 설명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그제야 받아들였다. 아침의 숲은 여전히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말이 줄어든 채로 그 앞에 서 있었다. 말 대신 몸이 먼저 반응했고 몸은 필요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만 하루를 받아들이고 그 이상은 굳이 가지려 하지 않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숲을 대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산다. 제자리에 서서 서로를 돕고 때가 오면 기꺼이 내어놓는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미물이 한낱 가질 수 없는 그 충만한 소유를 흉내 내지 않으면서 바라보는 일. 오늘 아침에도 나는 그 문턱에 기대어 서 있다. 충분히 살아 있다고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