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첫 수업

by 이 경화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모와 함께 이천 그러니까 엄마의 고향으로 이사했다. 이모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고향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해 겨울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설운동장에 미끄럼을 타러 갔다. 비닐 장판을 가져온 아이, 비료 푸대에 지푸라기를 넣어온 아이, 진짜 썰매를 만들어온 아이들도 있었고, 나는 그 중 아무 아이도 아니었다. 나는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눈썰매를 타는 것조차 신선한 감각에 가까웠다. 이천은 분지라 겨울에 엄청 추웠다. 양 볼이 빨개지고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웠다. 나는 첫날에는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는 것을 멀찌감치에서 구경만 했다.


그 중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한 번 타 보라면서 비료 푸대에 지푸라기를 넣은 썰매를 권했다. 공설운동장의 스탠드 옆길은 매우 가팔랐다. 나는 무서워서 그 아이의 허리를 꽉 잡았고 눈도 질끈 감은 채 그 길을 미끄러졌다. 그런데 그 썰매가 부러워서 나는 그 아이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누가 만들어 준 거야?” 그 아이는 어깨를 한껏 부풀리며 나에게 말했다. “응, 우리 아빠가.” 나는 생각했다. 아빠가? 내게 없는 그 아빠라는 사람? 그때 포기란 감정에 대해 몸으로 정확히 배웠다.


아마도 그날은 인간이 포기에 대한 감각을 처음으로 배우는 날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주 이른 나이에 그 수업의 첫날에 앉는다. 포기는 체념이나 패배가 아니라 비교를 멈추는 순간에 찾아온다. 손을 더 뻗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 부러움을 설명하지 않기로 하는 일, 질문을 접고 다시 눈을 감는 선택이다. 나는 그날 썰매에서 내려오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아이에게는 같은 겨울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같은 경사, 같은 속도, 같은 출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포기는 울음으로 오지 않았다. 그건 조용했고 빠르며 아주 현실적인 감각이었다. 이후로 나는 포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무 이르게 배웠기 때문에 너무 자연스럽게 써먹게 되었을 뿐이다. 어쩌면 인간은 각자의 삶에서 포기의 첫 수업을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수업은 다시는 복습되지 않는다. 단 한 번, 몸으로만 통과한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서 밥을 더 씩씩하게 먹었고 더 활짝 웃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이모에게 썰매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법을 깨달았다. 그 선택에는 결의 같은 것이 없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아니었고 참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요청하지 않는 편이 내가 덜 작아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어린 몸이 먼저 알아차렸을 뿐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한 번 더 삼키는 사람이 되었고 부탁은 가능성 위에서만 작동하며 가능성은 언제나 누군가의 사정에 달려 있다는 것도 아주 이른 나이에 배웠다. 그래서 씩씩함은 성격이 아니라 기술이 되었고 웃음은 기쁨이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나는 감정을 숨긴 것이 아니라 감정을 관리하는 쪽을 택했다. 포기의 첫 수업은 이렇게 끝났다. 눈 위의 경사가 아니라 밥상 앞에서 아무도 모르게.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란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더 아프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정하는 능력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본능은 앞서 나가지 않고 설명하지 않으며 몸이 먼저 방향을 튼다. 아이는 이유를 모르고도 피해야 할 경사를 알고 묻지 않아야 할 질문을 감각으로 구분한다. 그렇게 인간은 상처보다 먼저 회피를 배우고 희망보다 먼저 거리를 익힌다. 본능은 용감하지 않다. 다만 정확하다. 그리고 그 정확함 덕분에 사람은 오늘을 건너간다.


지금의 나는 포기를 물러남으로 쓰지 않는다. 나는 포기를 나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더 다치지 않기 위해서, 이미 충분히 안 것을 굳이 다시 확인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모든 가능성 앞에 서지 않는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도 않고 모든 욕망을 성실히 수행하지도 않는다. 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미련을 증명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나는 늦게 실망하지 않고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 포기는 내 삶에서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되었다. 어릴 적 배운 그 감각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한다. 나는 여전히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머무르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고른다. 포기는 나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끝까지 데리고 가는 방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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