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비한 꿈을 꾸었다. 나는 홀로 어느 회랑 앞에 서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 고요는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회랑의 끝에서 누군가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나는 천천히 회랑의 입구에 발을 디뎠다. 이곳에서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랑 안은 밝았고 빛은 고르게 퍼져 있었다. 기둥마다 라틴어가 하나씩 새겨져 있었고 그것들은 인간이 삶을 통과하며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질문들처럼 느껴졌다. 기둥의 맨 위에 적힌 단어들은 분명히 읽혔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글자는 낯선 기호로 변해 있었다. 질문은 보이는데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 회랑이 이해를 얻기 위해 걷는 길이 아니라 몸으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첫 번째 기둥에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나는 나의 처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누구도 자신의 시작 장면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다. 어머니의 몸 안에서 밀려 나가던 압력과 방향을 잃은 채 떠밀리던 순간과 갑작스럽게 쏟아지던 빛. 태어남은 선택이 아니었고 동의도 아니었다.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은 채 세상 밖으로 밀려났고 그 밀려남이 나의 첫 경험이었다. 어머니의 산도는 좁고 어두웠을 것이다. 나를 보내야 했던 결단과 나를 밀어내던 힘이 동시에 작동했을 것이다. 나는 원하지 않았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인간의 삶은 이처럼 철저하게 타의적인 시작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고 태어난 뒤에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 나선다. 살면서 수없이 처음을 다시 맞이했지만 그 어떤 처음도 그 출산의 순간만큼 무력하지는 않았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던 날 관계를 처음 시작하던 날 어떤 일을 처음 맡던 날에는 내가 한 발을 내딛는 선택이 있었다. 그러나 태어남만큼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나는 그 이후를 살아내야 했다. 오랫동안 나는 처음을 두려워했다. 시작이라는 말에는 늘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회랑의 이 기둥 앞에서 처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처음은 잘해내는 장면이 아니라 살아남는 순간이었다. 울며 숨을 쉬고 세상에 남아 있던 시간.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충분했던 상태. 삶의 모든 시작은 그 정도의 힘으로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회랑을 더 지나자 감각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태어난 직후 인간은 생각보다 먼저 느낀다. 말보다 먼저 닿아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감각에 민감한 편이었다. 소리에 쉽게 지쳤고 사람의 표정에 오래 머물렀다. 그런 성향을 약점으로 여긴 시간이 있었다. 세상을 통과하려면 둔해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병실에서 밤을 새웠다. 새벽녘 형광등 아래에서 시트의 주름과 기계의 소리와 숨의 리듬이 과장되어 다가왔다. 그날 나는 감각이 재능도 결함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감각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다만 모든 자극에 응답하며 살 수는 없다는 점도 함께 배웠다. 삶을 오래 통과할수록 우리는 덜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덜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 다음에는 욕망이 있었고 나는 오래도록 무언가를 바라며 살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멀리 가고 싶었고 더 인정받고 싶었다. 욕망은 나를 움직였지만 동시에 지금의 자리를 비워냈다. 손에 쥔 순간보다 손에 넣기 전의 시간이 더 선명했던 이유를 한참 뒤에야 이해했다. 어느 날 오래 바라던 일을 이루고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 욕망이 문제라기보다 방향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은 언제나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었는지 그 질문을 하지 않은 채 달려온 시간들이 나를 지치게 했다. 욕망을 없애기보다 욕망과 나 사이의 거리를 다시 조정하는 일. 그 이후로 나는 속도를 조금 낮추었다.
관계라는 단어가 새겨진 기둥 앞에서는 오래 서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잃은 적이 있었다. 함께 있다는 이유로 견뎌야 했고 관계라는 이름으로 나를 줄였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을 때였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관계는 나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유지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사실을. 관계 속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었다. 이해받기 위해 애쓰던 태도와 버려지지 않기 위해 참던 습관을 하나씩 내려놓자 관계는 조용해졌고 조용해진 만큼 오래 남았다. 그 다음으로 시간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나는 늘 늦었다는 감각 속에서 살았다.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재촉했고 현재는 늘 다음을 준비하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가 흘러갔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시간은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흘러가도록 두어도 괜찮은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이겨야 할 상대도 붙잡아야 할 물건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도록 허락하는 일이 필요했다.
회랑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상실과 침묵과 내려놓음이라는 단어들이 이어졌다.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사람도 장소도 역할도 잃었다. 상실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왔고 처음에는 텅 빈 느낌만 남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상실은 빼앗는 사건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데려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잃고 난 자리에 생긴 공간은 공허가 아니라 숨 쉴 틈이 되었다. 말을 많이 하던 시간도 떠올랐다. 설명했고 해명했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러나 말이 줄어들수록 삶은 단순해졌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었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내려놓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멈추었다. 여전히 많은 것을 붙잡고 있지만 무엇을 붙잡고 무엇은 놓아도 되는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얻게 되는 감각이었다. 더 이상 모든 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회랑의 끝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그러나 처음과는 달랐다. 혼자라는 사실이 비어 있지 않았다. 이 길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나를 덜어내기 위한 통과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빛이 옅어졌고 회랑의 공기가 풀어졌다. 발바닥에 남아 있던 감각이 서서히 사라졌다.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새벽인지 아침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이 방 안에 얇게 머물렀다. 나는 잠시 움직이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숨은 고르게 오르내렸고 심장은 조용했다.
꿈속의 회랑은 사라졌지만 처음이라는 단어는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태어날 때처럼 나는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지 않았고 다만 숨을 쉬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지금 숨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게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은 채 밀려나듯 다만 살아 있는 상태로.
그리고 나는 잠시 더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