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에는 대개 전조라는 것이 있다. 사건은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곁을 맴돌고 있었던 신호의 집합이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파동으로 다가와 우리의 일상을 스치고, 때로는 꿈의 형태로,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나 예감으로 몸에 남는다. 나는 그것을 우주가 보내는 거대한 사인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 사인이 늘 분명한 문장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일보다 이미 지나간 일에 훨씬 능숙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언제나 일이 일어난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 그때 그게 신호였구나 하고. 살다 보면 나의 지성과 경험, 그리고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는 질문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설마? 혹시? 이 두 단어는 같은 자리에서 태어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란다. 이 질문들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순간은 대개 삶이 미세하게 방향을 틀려는 때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주는 우리에게 전조적인 암시를 건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암시를 너무 자주 무시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혹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혹시는 가능의 언어이고, 설마는 불가능의 언어다. 겉으로 보면 둘은 아주 닮아 있다. 둘 다 확신이 없고, 둘 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말한다. 하지만 혹시는 문을 아주 조금 열어두고 있고, 설마는 문을 잠그는 쪽에 가깝다. 나는 이 둘의 차이를 삶에서 여러 번 목격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나 역시 설마 쪽에 더 자주 기대어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기대했다가 다칠까 봐, 믿었다가 무너질까 봐, 스스로에게 가능의 언어를 아끼며 살았다.
하지만 삶은 이상하게도 혹시라는 말에 반응한다. 혹시라는 단어는 아주 작은 틈을 만든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빛이 스며들고, 전혀 다른 미래가 슬쩍 얼굴을 내민다. 나는 혹시의 힘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것은 거창한 결심이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니었다. 다만 마음속에서 문장 하나를 바꾸는 일이었다.
“혹시 알아?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지.”
이 문장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가능의 문장이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향한 속삭임이다. 이 문장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반복하며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하루의 결이 달라진다. 같은 일을 겪어도, 같은 실패를 마주해도, 그 문장은 나를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준다. 가능을 향한 아주 얇은 실 한 가닥처럼.
그런 마음을 매일 한 겹씩 쌓아 올리면, 그것은 어느새 두터워진다. 처음에는 종잇장처럼 얇던 가능이 시간이 지나며 천이 되고, 결국은 담요가 된다. 그리고 그 담요가 몸을 덮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꿈은 갑자기 생겨나는 환상이 아니라, 가능한 영역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그래서 꿈에는 언제나 시간의 냄새가 난다. 기다림의 냄새, 버팀의 냄새, 수없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흔적의 냄새가.
꿈을 품는다는 것은 그래서 늘 부정과 직면하는 일이다. 세상은 친절하게 묻는다.
“설마 그 일이 되겠어요?” 그 질문은 악의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문장은 종종 우리의 가능을 아주 손쉽게 깎아낸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질문이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입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설마는 타인이 던지는 설마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한계는 타인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타인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안전하게 움직이는 법을 배워왔다.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하다, 그 이상은 무리다. 하지만 타인이 정해주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는 일만큼 가련한 것도 없다. 그 삶에는 주체가 빠져 있다. 선택도, 책임도, 기쁨도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
삶은 때로 아주 사소한 차이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점 하나가 문장을 바꾸고, 문장이 생각을 바꾸며, 생각은 결국 삶을 바꾼다. 혹시라는 점 하나가 찍히는 순간, 우리는 다른 우주를 향해 한 발을 내딛게 된다. 그 한 발은 작고 미약해 보이지만, 되돌아보면 분명히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혹시 알아요?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날지.”
이 문장은 누구를 설득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오늘을 견디는 사람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은 등불 같은 문장이다. 기적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기적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두자고 말할 뿐이다. 나는 오늘 아침 이 작은 문장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문장은 여러분에게이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건네는 문장이기도 하다.
혹시를 믿는 하루가 설마에 지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그 가능의 문장이 오늘을 조금 덜 무겁게 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