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라

by 이 경화



사람은 박수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직해진다. 평소에는 잘 관리하던 얼굴이 흐트러지고 말보다 빠른 감정이 먼저 몸을 움직인다. 누군가의 성취를 축하해야 한다는 당위와 그 성취를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 사이에는 늘 작은 틈이 생긴다. 그 틈에서 사람은 자신도 몰랐던 진심과 마주한다. 누군가와 나란히 걸어왔다고 믿었던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한 사람에게만 손이 모이기 시작할 때 그 박수는 처음에는 정당해 보인다. 노력의 결과이고 마땅히 받아야 할 몫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 장면이 반복될수록 관계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이 쌓인다. 같은 출발선에 있었다는 기억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긴장은 더 선명해진다.




박수에는 높낮이가 없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순서가 생긴다. 먼저 불린 이름 더 오래 이어지는 환호 조금 더 머무는 시선. 그 사소한 차이들이 마음속에 자리를 만든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지만 사람은 점점 자신이 어디쯤 서 있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그때부터 관계는 함께 있음이 아니라 버텨내는 일이 된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웃기 어려워지고 축하의 말은 마음보다 먼저 계산을 거친다. 진심을 숨기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지고 응원은 점점 의무에 가까워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있지만 마음은 각자의 방향으로 조금씩 멀어진다.




사람들은 흔히 같이 울어주는 인연을 깊다고 말한다. 슬픔은 비교적 안전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픔 앞에서는 편이 쉽게 생기고 위로는 자연스럽게 오간다. 울음은 금세 합류되지만 기쁨은 그렇지 않다. 특히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기쁨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같이 울어주는 것보다 같이 박수 쳐 주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관계 속에서 배웠다. 그래서 박수는 위험하다. 박수는 사람을 기쁘게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의 바닥을 그대로 보여준다. 말없이 쌓여 있던 비교와 억눌러 두었던 열등감과 설명되지 않은 거리감이 박수 앞에서 고개를 든다.




사람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난 것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대했던 반응과 실제의 태도 사이에서 실망은 생기고 그 실망은 종종 오해로 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어떤 관계는 애초에 박수를 견딜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을. 같이 울어주는 인연의 순간보다는 오랜 시간을 버티고 곁에 있어주며 쳐 주는 짧은 박수를 믿게 되었다.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정리된 뒤에도 남아 있는 태도. 크지 않아도 방향이 분명한 마음. 그 박수는 소리보다 오래 남고 말보다 정확하다.




아마 그래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속담이 생겨난 것 같다. 가장 환한 순간에 물러나는 것이 예의이자 지혜라는 말. 관계도 그렇다. 박수가 아직 따뜻할 때 등을 돌릴 줄 아는 사람만이 서로를 망치지 않는다.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고 적절한 퇴장은 오히려 존중에 가깝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빛을 받는 자리에 서고 또 한 번쯤은 그 빛을 바라보는 자리에 선다. 중요한 것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어떤 마음을 드러내느냐다. 그래서 나는 박수가 질투로 바뀌는 순간 조용히 거리를 둔다. 따지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도 않는다. 상처를 만들기 전에 서로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박수를 칠 때도 받을 때도 조심스럽다. 소리의 크기보다 마음의 방향을 본다. 순간의 환호보다 지속되는 태도를 살핀다. 아주 짧은 박수라도 오래 버텨 온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 박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응원한다. 다만 소리를 키우지 않을 뿐이다. 오래 버틴 사람에게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에게 남의 빛 앞에서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에게만 조용히 손을 모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박수를 칠 수 있는 사람으로 또 그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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