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작가병

by 이 경화

신인 작가병에 걸렸습니다. 면역제를 복용해 보고 주사도 맞아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들썩이고,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괜히 서점 검색창에 제 책 제목을 입력해 보는 증상입니다. 이 병은 책이 나오고 나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편의 원고와 한 편의 출판 기획서를 들고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습니다. 유명한 이름도 아니고 독자가 기다리는 작가도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이십 년을 견디며 써 온 문장들이 더 이상 파일 속에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 문장들을 세상 위에 한 번쯤은 올려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몇 군데에서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고,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을 하던 날 저는 울었습니다. 기쁨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 삶을 활자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실감 때문이었습니다.





에세이는 결국 숨길 수 없는 장르이고, 마치 목욕탕 앞에서 표를 끊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들어서는 기분과 닮아 있었습니다. 『견디는 동안 쓰였다』라는 제목도 그렇게 쉽게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판사와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힘겨루기를 했고, 신인 작가가 무슨 고집이냐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제목만큼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필하는 동안 실제로 견뎌야 할 일들이 많았고, 그 시간을 제목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작가는 글만 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출판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요구했습니다. 교정과 교열, 일정 조율, 디자인 논의, 홍보 방향까지 작가의 몫은 넓었고, 그 과정에서 마음 고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역시 이 책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계약 후 두 달 열흘 만에 책이 나왔고, 그 안에는 짧은 제작 기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십 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활자로 묶인 시간을 손에 들었을 때 저는 알았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시작이라는 것을.




예약 판매라는 시간은 제게 작은 시험처럼 다가왔습니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말보다 꼭 필요한 분께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지만, 막상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제 안에 숨겨 두었던 솔직한 감정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건넨 이십 년이 과연 누군가의 하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이 문장이 누군가의 밤에 머물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그 생각이 가슴을 조용히 누르곤 했습니다. 책을 예약해 주셨다는 메시지 하나 하나는 그래서 단순한 알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한 사람이 제 시간을 자신의 시간 속으로 들이겠다고 결정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한 줄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메아리처럼 돌아왔고, 그 메아리는 이 책을 앞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신인 작가병의 본질은 아마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내가 건넨 시간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았다는 신호를 기다리는 마음, 누군가가 이 문장을 읽고 잠시 멈추는 장면을 상상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그 마음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쓰는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은 가장 솔직한 동력이라고 믿습니다.




책은 인쇄로 끝나지 않습니다. 독자와 만나는 순간부터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한 사람의 책상 위에 놓이고, 한 사람의 밑줄이 그어지고, 한 사람의 밤에 스며드는 순간, 그때 이십 년은 제 자리를 찾습니다. 이 책은 독자와 만나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 만남이 없다면 이 문장은 절반만 완성된 상태로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과라도 깊게 만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한 셈일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을 견디고 있는 분들께 이 문장이 닿기를 바랍니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오래 흔들려 온 분들께, 제 문장이 잠시라도 기대어 쉴 수 있는 벽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인 작가병은 쉽게 낫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독자와의 만남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이 병은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릅니다. 불면이 아니라 동행으로. 그리고 저는 그 동행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