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출간 하루 전 입니다.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적었는지 에필로그로 대신 합니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와 있다고 느낀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고 잘 살아왔는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나는 여전히 밥상을 기억한다. 국이 끓고 밥 냄새가 집 안을 채우고 누군가는 말없이 수저를 놓고 누군가는 아무 이유 없이 내 앞에 앉아 있던 순간들. 그곳에서는 울어도 되었고 말을 잃어도 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삶은 나를 자주 혼자 두었다. 아직 어른이 되기엔 이른 날들에 나는 스스로 등을 두드리며 잠들어야 했고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으로 다음 날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도 사람은 늘 사람 쪽에서 나를 살게 했다. 뜨거운 밥 한 숟갈. 아무 말 없는 물 한 컵. “먹고 가라”는 한마디. 나는 많이 부서졌다. 기대하다가 믿었다가 사랑했다가 남겨졌다. 그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을 닫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끝내 사람을 버리지 못했다. 그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늦게 왔고 이별은 늘 예고 없이 왔다. 떠난 사람보다 함께 있던 시간이 더 오래 아팠다. 그래도 나는 알게 되었다. 함께 먹었던 밥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온기는 남는다는 것을. 어느 날부터 나는 잘 사는 법을 묻지 않게 되었다. 대신 오늘 하루를 견딘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말이 많은 위로보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것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설명하려 들지 않는 자리를 선택한다. 잘 해내고 있다는 증명 대신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온기를 남기는 자리. 말보다 먼저 숨이 고르고 판단보다 먼저 사람이 머무는 자리. 이 글들은 위로를 제공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부족이나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인 선택이다. 문학이 독자를 울리고 감정을 고조시켜야 한다는 관성에서 나는 이 책을 조금 비켜 세우고 싶었다. 위로가 목적이 되는 순간 문장은 그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울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독서. 감정이 소모된 뒤에야 책을 덮게 되는 경험 앞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불편함을 느껴왔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문학이 반드시 위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문학이 독자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냈다. 눈물을 요구하지 않고 동정을 유도하지 않으며 어떤 교훈도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장들은 독자를 끌고 가지 않는다. 독자의 목에 끈을 달아 인도하지 않는다. 작가와 독자가 수직으로 배치되는 구조를 나는 끝까지 경계했다. 이 책에서 독자는 위로받는 대상도 가르침을 받는 존재도 아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각자의 속도로 머무는 존재다.
밥상은 이 책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이미지다. 밥상은 화해나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문학이 독자를 데려가야 할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무대가 아니라 밥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은 독자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자리에 앉힌다.
이 수필은 ‘견디는 동안 쓰였다’. 그 표현은 수사가 아니라 이 책이 태어난 실제 조건이다. 이 문장들은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견딤이 축적된 흔적이다. 나는 이 글을 사유를 증명하기 위해 쓰지 않았다. 문학을 개념으로 밀어 올리기보다 태도로 남기고 싶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완성된 생각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방식에 가깝다.
이 책이 읽는 동안이 아니라 덮은 뒤에 조금 숨이 쉬어지는 곳이기를 바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사람으로 남아 있어도 괜찮다고 조용히 허락받는 시간. 나는 이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잠시 앉아도 되는 자리를 남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 자리에 이름이 붙지 않아도 좋다. 사람이 다치지 않고 다시 걸어나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