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단상

견디는 동안 쓰였다

by 이 경화

가슴을 얼마나 조리고 살았는지 집필에서부터 출간까지 심장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그간 살아왔다. 스무 해를 버티고 또 버티며 남은 것이 쌓여 문장이 되었고, 그 문장들이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열망이 과연 세상 밖으로 나와도 되는지, 나는 나 자신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어야 했다. 책을 낸다는 것은 단지 종이에 활자를 얹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숨겨두었던 나의 시간과 상처와 고집을 세상 앞에 조용히 펼쳐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출간은 설렘이기보다 시험처럼 느껴졌다.




단 한 편의 원고와 출간 기획서를 서른 곳에 던졌다. 주변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며 현실을 이야기했고, 신인 작가가 그렇게 무모할 수 있느냐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과 내 문장들을 그만큼 절실히 믿었다. 반나절 만에 걸려온 출판사 본부장님의 전화는 내게 작은 균열처럼 찾아왔다. 그 목소리와 꼼꼼한 서평은 나의 고독한 시간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읽어냈다는 증거였다. 그날 나는 알았다. 글은 혼자 쓰지만, 책은 혼자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신인 작가로서 출간일까지 해야 할 일은 집필만이 아니었다. 편집과 교정과 표지와 홍보와 일정과 계산,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육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이었다.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밥을 먹는 시간조차 원고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숟가락을 들다가도 문장이 떠올랐고, 잠이 드는 순간에도 고쳐야 할 표현이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급히 이불을 박차고 모니터 앞에 앉으면 방금 전까지 또렷하던 문장이 사라져 버려 머리를 흔들었던 밤도 많았다. 일상을 살아내야 했고, 처리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도 밀려왔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원고에 매달렸다. 스무 해 동안 써 온 문장들이 다시 보니 조악하기 그지없다고 느껴졌던 순간도 있었고, 제목과 목차를 정하는 시간조차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마저 내 시간의 일부였다.



나는 에세이에 위로를 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작가의 위계로 가르치지 않겠다고, “괜찮아질 거야”라는 허상의 희망을 함부로 건네지 않겠다고. 대신 내가 견뎌낸 시간의 질감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지금을 잘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은 전해주고 싶었다. 견딤은 박수받지 못하는 시간이고, 티 나지 않는 시간이며, 종종 패배처럼 보이는 시간이지만, 실은 삶이 가장 깊어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 견딤이 삶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관계로 확장되기를 나는 믿으며 책을 써 왔다.



누군가를 맞아들이고, 밥을 짓고, 누구를 안아주는 일. 내 책은 다섯 살의 꼬마 경화와 외할아버지의 겸상에서 시작된다. 한 상에 마주 앉아 먹던 밥, 숟가락을 드는 법을 배우던 손, 말없이 건네지던 눈빛. 그리고 엄마와 보낸 아홉 해 동안 배웠던 삶의 태도. 거창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던 시간들. 나는 그 밥상에서 자랐고, 그 밥상에서 사람을 배웠다.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한 권의 환대에 대한 기록이다.

삶은 거대한 환대의 장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과 깨우침과 인연을 통과한다. 때로는 오해받고,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간다. 나는 나로서 어떻게 내 삶을 맞아야 하는지,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아마 우리는 모두 그 간절한 물음의 선상에 서 있는 존재들일 것이다.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며 자신의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사람들.



삶은 생각보다 소음이 가득하고 어지럽다. 매일이 혼란의 연속이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흔든다. 그래도 놓지 말아야 했던 것들이 있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끝내 나를 지탱해 준 것들. 한 끼의 밥,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문장, 한 번의 용기. 그 사소한 것들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그 쌓임의 시간을 풀어내고 싶었다. 거대한 성공이나 극적인 반전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썼던 하루하루를.

이제 책은 내 손을 떠났다. 두 달 열흘 동안 울고 부서지고 다시 붙이며 써 내려간 문장들이 독자에게 닿을 것이다. 출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내가 견뎌온 시간들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시간과 만날 차례다. 만약 이 책이 당신에게 닿는다면, 나는 당신 곁에 조용히 앉아 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당신의 삶도 지금 잘 견디고 있다고, 그 시간이 헛되지 않다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밥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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