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게 최선이었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 방어 문장 하나쯤을 가지고 산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어.” 이 말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아주 편리한 방패이기도 하다. 실패한 선택 앞에서 이 문장은 과거의 나를 잠시 보호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를 멈춰 세우는 말이 되기도 한다.
시간은 선택을 다시 채점한다. 선택을 할 당시의 사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 그 결과가 좋으면 우리는 용기라고 부르고, 나쁘면 무모함이라고 부른다. 같은 선택인데, 이름만 바뀐다. 그 사이에서 과정은 늘 지워진다. 밤새 고민했던 시간, 불안 때문에 망설였던 순간, 누군가의 말에 흔들렸던 마음 같은 것들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쉽게 심문한다. “왜 그런 걸 골랐지?”라고 말하면서, 마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게 된다. 하지만 그건 공정한 질문이 아니다. 답을 알고 시험지를 다시 푸는 사람의 태도에 가깝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가진 정보도, 지금의 내가 가진 경험도 없었다. 그걸 무시한 채 과거를 비난하는 건, 후회라기보다 자기 괴롭힘에 가깝다.
그렇다고 모든 선택을 미화할 필요는 없다. 분명히 잘못된 선택도 있다. 다만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다. 과거의 나를 계속 죄인으로 세우면, 현재의 나는 배울 기회를 잃는다. 죄책감은 스스로를 벌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방향을 바꾸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땐 최선이었어”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도 있고, 기록이 될 수도 있다. 변명으로 쓰이면, 거기서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기록으로 쓰이면, 그 문장은 이렇게 바뀐다. “그 시절의 나는 여기까지밖에 보지 못했다.” 이 문장은 과거를 용서하는 동시에, 현재를 조금 더 정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정직함이 있어야 다음 선택이 달라진다.
우리는 종종 과거를 고쳐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로 가능한 건,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을 고치는 일뿐이다. 선택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 선택이 남긴 의미는 계속 바뀔 수 있다. 후회가 나를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나를 업데이트하게 할 수도 있다. 차이는 태도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