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으로 인생을 배운 1인
바야흐로 관찰 예능의 시대이다.
요즘 어느 채널이든 관찰 예능을 만날 수 있다. 처음 관찰 예능 속 주인공은 연예인과 그 자녀들이었고, 어느 순간 유명 식당의 셰프들이 그 자리를 꿰찼다. 이후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이 대세를 이루더니, 이제는 연예인의 매니저, 외국인, 인플루언서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출연한다.
난 이러한 관찰 예능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카메라가 없는 듯 자연스럽게 보이려 하는 행동은 오히려 더욱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일상을 보여주는 것인지 홍보를 하는 것인지 모를 방송 도처에 깔린 간접광고(PPL)에는 괜한 거부감마저 들었다. 그런 관찰 예능을 볼 때마다 대본이 있고 인위적인 모습일지라도 왠지 더욱 사람 냄새나던 무한도전이 그리워졌다.
나는 오랜 기간 MBC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좋아했고 꾸준히 시청했다. 본방 사수는 물론이고, 다시 보기에 들인 비용도 꽤나 많았으며, 가끔은 무한도전에 나왔던 장소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시청자 투표라도 있는 날에는 방송이 끝나고 곧장 imbc 홈페이지에 접속해 투표에 참여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부터 소소한 웃음을 주던 무한도전은 군대에서는 힘겨운 평일 일과를 버텨내고 맞이하는 주말 저녁의 포상이었고,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가요제는 새로운 애창곡 제조기였다. 나이를 먹어가고, 사는 게 바빠지며 종종 놓치는 회차가 있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오랜 친구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무한도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종영에도 당시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세상에 찌들어 주말 저녁 시간에 TV를 보고 있을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고, 종종 반복되는 캐릭터와 아이템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주요 멤버들이 질병이나 사건사고로 이탈한 뒤로는 찾아볼 만큼 재미가 있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삼십 대 중반에 들어선 어느 날 TV를 보다가 불현듯 무한도전이 그리워졌다. 다른 이의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관찰 예능을 멍하게 보고 있자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웃을 수 있었던, 때로는 감동을 주고, 때로는 콩트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들게 해 주던 무한도전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무한도전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30대에 다시 만난 무한도전은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명수는 열두 살> 에피소드는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추억 벨이었고, 마냥 웃기기만 했던 <무한상사>는 실제 회사에서 일어나는 코미디 같은 직장생활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애잔하게 느껴졌다. 또 1년 전후의 건강상태를 체크한 <나 vs나>와 간염으로 쓰러진 박명수 님의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을 말해봐> 특집은 현재 내 건강은 어떠한지 점검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도 무한도전이고, '평범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해 준 것도 무한도전이었다.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 무언가를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지금'이라는 사실도 무한도전을 통해 배웠다. 무한도전이 이토록 배울 점이 많은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마흔을 바라보게 되면서 과거 박명수 님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내 나이 40에 이런 걸 하냐"는 투정이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10년 전 그대로의 무한도전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니, '과연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그 긴 시간동안 무엇을 이루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어 아쉬움도 남았다.
아마 내년이나 그 이후에 무한도전을 다시 보게 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것만 같다.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하고 많은 배움을 주었던 내 인생 최고의 프로그램, 오늘따라 무한도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