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의 관계를 적는 칸에서 멈춰 선 날
그날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여자친구를 집 앞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던 길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갑자기 부정맥 증상이 심해졌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무섭다는 말이 먼저였다.
다시 올라갔을 때 그녀는 현관 앞에서 울고 있었다. 평소에도 가끔 증상은 있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서둘러 차에 태우고 응급실로 향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마음이 급해졌다.
응급실에 도착해 그녀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접수대 앞에 섰다. 직원은 종이를 내밀며 환자와의 관계를 적어달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펜을 들었다가 잠시 멈췄다.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친구.’
그 네 글자를 쓰는 순간, 그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내 팔을 붙잡고 울던 사람이었는데, 그 단어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이상하게 그 칸을 채우는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이미 이 사람에게 그 정도의 이름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걸.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있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자 관계의 이름이 다르게 느껴졌다.
특별한 고백은 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로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오늘까지는 남자친구였지만, 그날 이후로는 남편이 되고 싶어졌다. 같은 사람이었지만, 내 안에서의 의미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우리는 결혼 6년 차다. 가끔 그날을 떠올리면 응급실의 소리보다 먼저 생각나는 건 그 종이 위에 적힌 네 글자다. 어떤 순간은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이름을 바꿔놓는다.
ㅡ The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