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떠난 뒤에야 찾아갈 곳의 의미를 알게 될까

남겨진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건 장소가 아니라 함께 쌓아둔 시간이다

by The 늦기 전에

사람은 왜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자꾸 갈 곳을 찾게 될까.


살아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상하게 떠난 뒤에 선명해진다.

한 번 더 볼걸.

한 번 더 갈걸.

한 번 더 같이 밥 먹을걸.


후회는 늘 행동보다 늦게 온다.

그리고 그 후회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어떤 장소 앞으로 데려간다.


산소를 찾고, 납골당을 찾고,

살던 집 근처를 서성이고,

괜히 지나가던 길을 다시 돌아본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정말 찾고 있는 건

그 사람의 몸이 있는 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은

내 마음을 잠깐 내려놓을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데

그걸 둘 곳이 없을 때

슬픔은 더 오래 허공에 머문다.


기억은 분명 있는데

그 기억을 붙들 손잡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그저 찾아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데

막상 발은 갈 데가 없었다.

그게 생각보다 오래 아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누군가를 잃고 나면 자꾸 장소를 찾는다.

떠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신을 위해서.


견디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잠깐이라도 이 마음을 올려둘 자리가 필요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정작 남겨진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건

특정 주소가 아니라는 걸.


무덤이 있어서 버티는 것도 아니고,

유골함이 있어서 견디는 것도 아니다.


정말 오래 남는 건

함께 쌓아둔 장면이다.


별것 아닌 저녁 한 끼,

대수롭지 않게 넘긴 통화 한 번,

귀찮아서 미뤘던 방문 한 번,

같이 웃었던 짧은 순간 같은 것들.


남겨진 사람은

그 장면들로 버틴다.


보고 싶을 때 꺼내 보고,

후회가 밀려올 때 붙들고,

무너질 것 같은 날 잠시 기대 선다.


문제는

그런 장면들은 떠난 뒤에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뒤늦게 안다.

내가 찾던 건 장소만이 아니었다는 걸.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보고 싶을 때 꺼내어 버틸 수 있는 시간,

남겨진 내가 기대 설 수 있는 기억,

마음을 둘 수 있는 관계의 흔적이었다는 걸.


떠난 뒤에

꽃도 놓을 수 있고, 절도 할 수 있고,

사진도 꺼내 볼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는 일,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거는 일,

한 번 더 찾아가는 일은

그때 아니면 할 수 없다.


그래서 상실은

사람을 슬프게만 만드는 게 아니라

자꾸 늦었다는 생각 앞에 세운다.


더 잘해둘걸.

더 자주 갈걸.

더 많이 남겨둘걸.

결국 남겨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위로나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붙들 수 있는 장면 몇 개,

버틸 수 있는 기억 몇 개,

그리고 마음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 하나.


사람은 떠난 뒤에야

찾아갈 곳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때서야

살아 있을 때 만들어둔 시간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있을 때 잘하자는 말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나중에 붙들 수 있도록,

떠난 뒤에도 버틸 수 있도록,

지금 장면을 남겨두는 마음.


어쩌면 남겨진 사람을 살게 하는 건

큰 사랑이 아니라

평범한 날에 함께 만든 작은 장면들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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