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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숲 Apr 12. 2023

번아웃

이제는 '번'하기 전에 나를 구할 것.

 25살의 봄은 유난히 나를 메마르게 했다. 팍팍하던 취업난 속 부모님 품에 대졸공채 합격 꽃바구니를 안겨드렸던 그 지난해 겨울까지 만해도 언제까지나 반짝일 것만 같던 신입사원. 그 신입사원 OJT(On-the-Jop-Training:직무교육)의 봄이 첫 번째로 기억하는 나의 공식적 번아웃이다. 당시에는 그런 내 처지를 대변하고 옹호해 줄 수 있는 단어가 변변치 않았고 결국 난 그 '번아웃 같은 그것'에 졌고 신입사원생활 3개월 만에 퇴사자 아니 낙오자가 되었다.


 국내 1위의 인테리어 회사의 마케팅팀 공채로 입사했지만 기업의 전통은 모든 직원이 영업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줄로 적자면 의도는 훌륭하다. 하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들의 상황은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줘야 할 회사 내 시스템은 더 훌륭하지 못했다. 누구는 사수가 영업실적을 나눠줬다더라, 누구는 급하게 영업용 차를 뽑아서 몰다 사고가 났다더라, 누구는 부사수가 서너 번은 바뀐 사수 밑에 들어갔다더라. 중 마지막이 내 얘기다. 나중에 퇴사면담을 할 때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사수는 다른 팀에서 영업팀으로 좌천된 상황인데 들어오는 부사수마다 버티지 못하고 나가서 나름의 폭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신입사원 연수기간 평가가 높다는 이유로 내가 폭탄전담반으로 배정이 된 것이었다. 패기의 신입사원이었 던지라 꼭 버티고 말리라 매일 다짐하며 출근길을 나섰다. 하지만 결국 얼마 못 가 나라는 인간의 한계 그리고 냉혹한 사회의 불합리함만 절절이 느끼고 폭탄전담반에서 퇴사자 1군 행렬에 오르고 말았다.


 매일 7시 출근, 부서회의, 영업준비, 강화마루 샘플과 각종 카탈로그들을 짊어지고 뚜벅이 영업, (말이 영업이지 받아주지도 않는 대리점들을 돌며 외면만 대차게 당하고 다니는 일정) 회사복귀, 틈틈이 캐드작업 및 발주, 다시 회의, 주에 3-4회는 새벽 2-3시까지 회식, 술냄새를 향수 삼아 다시 7시 출근. 또다시 회의.

끝이 아니다. 한 달에 한번 영업부진자 주말 등산.

이렇게 적고 보니 참 지난하고 꼬깃한 세월이었다.


  한 달쯤 지나자 영업을 나가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무기력이 찾아왔고 나는 그 무기력을 잠재우려 편의점에 들렀다. 어느 날은 양갱, 어느 날은 풍선껌, 어느 날은 초코바를 전전하다 다이제스티브 초코로 정착했다. 강남을 도는 버스에 올라 바깥 풍경을 TV 보듯 멍하니 틀어 놓은 채 다이제스티브 초코를 반절이나 우걱우걱 먹어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끝을 모르고 심연으로 떨어져 버린 내 기력에 숨이라도 붙어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그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기력과 함께 나는 칼로리를 덤으로 주는지 모르고 3개월 만에 7kg를 얻었다. 그렇게 칼로리는 '번'하지 못하고 내게 남았다.


출처: pinterest, menshealth.com


 두 번째 번아웃의 조각 역시 끝은 퇴사다. 아이를 낳고 워킹맘 생활 2년을 채우고 나서였다. 그 당시까지도 번아웃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을 때였고, 산후우울증도 지금처럼 수면 위로 올라오던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무기력, 슬픔, 억울함, 답답함 등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감정과 순간들이 산후 우울증이었는지, 번아웃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내 상태는 가득 찬 물 잔에 딱 한 방울만 더해지면 흘러넘쳐버리는 표면장력과도 같았다. 그 한 방울이 떨어지기까지 나는 남편 몰래 몇 번의 밤들을 한밤중에 거실에 나와 TV를 켜 놓고 숨죽여 울었고, 회사 사람들에게 내 무기력이 들킬까 내 짜증이 새어 나올까 점심시간을 홀로 보내는 날이 늘어갔다.


 누군가는 내게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적당히' 해도 괜찮은데 내가 가진 모든 걸 100으로 하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에 스스로 힘든 거라 했다. 그건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얘기지만 더 정곡을 찌르는 건 그럼에도 어디에서나 미안하고 부족한 존재임을 매 순간 자각하는 일들이었다. 아직도 수많은 워킹맘들이 스스로 작아지고 작아지다 결국 소멸해 버릴 것 같은 자각들 때문에 가슴속 고이 사표를 품고 출근을 하는 거겠지.  결국 나는 두 번째 번아웃의 고비도 사표로서 일단락을 시켰다. 25살의 신입사원과 32살의 워킹맘은 그렇게 번아웃의 패배자로 남았다. 당시에는 '존버'라는 키워드가 사회 분위기였고 존버하지 못한 나는 남들처럼 눈 감고 귀 막고 버텨내지 못한 스스로를 꽤 한참이나 책망했다.


 그렇게 전업주부가 되었고 한동안 '번아웃’은 직장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진짜 욕심을 부려온 이상은 전업주부라는 이름을 더 빛나게 해 줄 '좋은 엄마', '좋은 아내'라는 타이틀이었고 그것은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집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퇴사는커녕 포기도 못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전업주부로서의 크고 작은 번아웃들은 내가 물러설 수 없는 것이었고 온전히 겪어내고 또 그들에게서 도망치고를 반복하며 6년 차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번'하기 전에 나를 구할 수 있는 나만의 번아웃 극복 메커니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몇몇 것들이 내 안에 장착되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25살의 내가 번아웃 증후군 대처법을 알았다면 슬기롭게 그 순간들을 넘겼을까.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결국은 다 타버리고 소멸하고 말았던 그 두 번의 패배들이 있었고, 그렇게 바싹 타고나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제는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타버린 패배들은 흉터로나마 남아있고 그것들을 매만지며 이제 나는 스스로를 태우지 않고 가만히 불을 머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그 불의 온도는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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