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 김소영에세이 '진작 할 걸 그랬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유행 같다.
아직 회사를 오래 다녀본 적 없지만,
브런치를 하다 보니 퇴사와 관련된 그런 유형의 글들을 많이 보는 것 같다.
사람들은 다니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 하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다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진정 나에게 뭔가를 깨닫게 해 주고 의미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는 것이다.
돌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다.
뭔가를 포기한 체 어딘가로 간다는 건 더더욱.
멀리 오고 돌아갈 길이 먼 사람일수록 여러 생각들이 많이 들 것이다.
다만 퇴사를 결심하고 나에게 솔직해져 다른 길과 함께 행복을 향해 갈 수 있다고 답을 찾았다면
그 결심과 마음을 잃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위로를 계속해서 받기에는 우리는 무감 감해지는 습성이 있어 분명 둔해질 것이다.
선택하고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당신은 분명 '도망'이 아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거다.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를 쫓아보고 싶다면,
힘들더라도 후에는 웃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진작할 걸 그랬어]의 저자인 김소영 전 아나운서의 책방 스토리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끄적끄적 남기며 내가 다음번에 진로와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름 해법은 아니더라도 힌트 정도는 줄 책이다.
너무도 고맙다.
그중 인상 깊었던 구절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방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p.33
"왜 책방 차리려고?"
일본 여행 계획을 짜던 나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
"내가 뭐 차린대? 그냥 책방이 좋다는 거지."
"요즘 같은 시대에 책방 하면 금방 망할걸. 사람들이 책을 안 읽잖아."
이때만 해도 정말 차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친구의 냉정한 조언에 새삼 뜨끔했다.
p.108
그날 우리는 '멋진 남자란 무엇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생각하는 멋진 남자는 카레닌처럼 기쁠 때나 힘들 때나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 떨지 않는 차분한 사람,
하지만 내게 카레닌은 표현이 서툴고 무정한, 삼께 살면 외로울 것 같은 남자다. 그렇기에 결혼 후에도 늘 외로웠던 안나가 촉촉한 눈빛으로 다가온 젊은 장교 브론스키에 끌린 것도 이해는 간다고.
남편은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실로 충격적이라며, 이제는 자기도 진중함을 버리고 더 많이 표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잘하고 있었는데,
p.128
하지만 당시 정권의 입맛에 맞춘 뉴스 보도와 회사 내부의 폭압적인 상황에선 그런 꿈은 꿀 수 조차 없었다.
앵커 멘트를 손볼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고, 편향된 보도에 의문을 제기할수록 미움을 받을 뿐이었다.
회사와 같은 입장에 선 선배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조직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앵커로서 제대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자리를 내려놓고 싶었다.
시청자에게는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그런 시기가 오게 마련이다.
무슨 수를 써도, 아무런 진심도 통하지 않는 시기. 자책과 자학의 시기를 거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더 책으로 파고들었다.
논픽션보다는 상상 속에 머물 수 있는 소설책을,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서와 역사책을 읽으며 속을 달랬다.
p.134
'앞으로 내가 어디에 있든 오늘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늘 불명확했던 미래의 상이 처음으로 잡힌 순간이었다.
p.150
"당신은 하루키를 좋아하시나요?"
p.184
언제쯤 우리의 걷는 속도가 비슷해질까.
다급히 빨라지는 걸음을 멈추게 하고,
멈춰버릴 듯한 걸음을 다시 떼게 만드는 우리의 속도.
p205
몸이 마비되거나 정신의 일부분이 약해진 환자들은 다시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자포자기식 고통을 겪는 다고 한다. 하바의 다양한 시도는 그런 환자들에게서 의욕을 이끌어낵,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히바는 병원을 '용서가 없는 현장'이었다고 표현했다. 유명 작가의 신작이라든지 내실 있는 출판사에서 펴낸 책 등 보통 사람이라면 신뢰할 만한 정보로는 어떤 호감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저히 어떤 책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해야 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스스로 '읽고 싶어 지는 책장'을 만드는 것, 그 마음 안에는 단순히 독자를 유혹하겠다는 생각 이상의 결의가 담겨 있다.
p.222
이렇듯 큐레이션은 마치 마인드맵을 그리듯 하나의 동그라미에서 무궁무진한 가지를 뻗어갈 수 있다.
p.316
화려한 방송의 세계에서 반 발짝 벗어나 나는 책을 팔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한 권의 책에 내 취향을 담고 재미있는 행사를 기획하며 설레는 하루하루를 만들고 있다.
물론 자유로운 만큼 커진 불안도, 밤마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는 일도 내 몫이지만.
자고 일어나 책방 문을 열고 갓 내린 커피 향기가 퍼지는 작은 공간 안에 있으면 모든 게 당분간은 괜찮을 예감이 든다.
도쿄 책방 여행길에서 이 행복을 발견해준 나에게 고맙다.
*저작권 문제시 삭제 조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