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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원 Jun 21. 2021

<불한당>: 가난한 빛이 드는 사랑

어떤 시인은 어찌할 수 없음, 속절없음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문장이 좋았다. 사랑과 애정, 관계에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속절없이 마냥 빠져버리는것만이 전부인 우리는 그 감정을 퍽 좋아하여 거기서부터 피어나는 온기와 희망을 음미하며 살아간다. <불한당>은 속절없이 빠져버린 사랑의 모양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약'에 대한 상상은 잔인하다.

있을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수많은 만약들은 결국 끝에와서 현실의 씁쓸함만을 증폭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좋아하는건 처절하게 소멸한 관계에 대한 희망을 상상 속에서라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현수가 느낀 죄책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재호가 끝까지 간직했었던, 해일처럼 밀려온 감정의 불가항력을 알기에 관객은 그들의 상상속 재호와 현수의 행복을 소망하면서도 그럴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에 온전히 침잠하여 쉬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영화가 끝나고 숨을 돌릴때쯤 우리는 인물들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누구보다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인생을 처연히 거두는 당신은 행복했는지, 사랑했던 사람의 잔인한 손길을 맞이하는 당신의 마지막 시야는 그래도 사랑을 향해있었는지, 텅빈 공허를 느끼는 아무도 없는 새벽이 슬프지는 않았는지.


한순간도 마음놓고 타오르지 못했던 젖어버린 사랑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풋사랑이라 하기에 그들의 애정은 너무도 진하고 짙었으며 처절했지만 농익은 사랑이라 하기엔 그들은 서툴렀고, 몰랐고, 거칠었다.


따뜻했지만 쓸쓸했던, 공허함이 가득했던 미완의 사랑.

온기가 가난한 빛이 드는,

동이 트는 새벽녘같은 사랑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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