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아이들이 하도 책을 안 읽으니 학교 도서관에서 한 번씩 이벤트를 연다. 그 해에는 도서관에 와서 20분 짜리 모래시계를 세워놓고 책을 읽거나 대출을 하면 선생님께서 도장을 찍어주고, 20개의 도장을 모은 학생은 물총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 여름을 앞둔 시점이었고, 새 물총을 갖고 싶었던 첫째 아이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 틈틈이 짬을 내어 도서관을 들락거린 결과 드디어 도장 20개를 채웠고, 원하던 물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 나 오늘 물총 받는다!"
그날 아침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날아갈 듯했고, 나 역시 스스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자 온 세상을 가진 듯 새 물총을 껴안고 나타날 사랑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현관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맞이한 건 버티고 버티던 댐이 한순간에 터지듯 쏟아져내리던 아이의 눈물이었다.
"엄마, 00이가 내 물총 망가뜨렸어. 난 한 번도 못 쏴봤는데, 안 된다고 했는데도 뺏어서 도망갔어."
어찌할 새도 없이 내 품으로 무너져 내린 아이는 참아 왔던 울음을 토해냈다. 앞뒤 사정을 모르고 들었다면 무슨 큰 일이 났구나 싶을만큼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물총이 갖고 싶거든 책을 읽었어야지, 왜 빌려준다고도 안 했는데 낚아채가서 망가뜨리는 거야! 왜 남의 시간과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거야!"
하지만 어떤 말도 아이의 쓰라린 속을 위로할 수 없어보였다. 어디서 그 많은 눈물이 계속 흘러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쉬지 않고 울어댔다. 하기는 새 물총에서 뻗어나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상상하며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포기하고 노력했는데 물통에 물 한 번 채워보지 못하고, 제 눈 앞에서 물총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광경을 지켜보았으니 그 속이 어떨까. 안쓰러운 마음에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의 머리카락 닦아주고, 등을 쓸어주며 그치기를 기다렸으나 30분이 지나도록 그 지경이자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다. 그깟 물총 하나 가지고 뭐 그리 서럽느냔 말이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아이 인생의 첫 번째 좌절이겠구나.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내 방', 그 안에 계절마다 패션쇼가 가능하도록 정리돼 있는 옷가지들, 시트를 뒤로 젖히면 눕다시피 해서 타고 다닐 수 있는 큰 차. 아침밥을 먹으며 향후 일주일 치 식단을 짜고도 남을 만큼 온갖 먹거리로 가득 차 있는 냉장고. 인간의 생존과 일상 생활을 위한 의식주가 완비돼 있는 것은 물론이오, 하교 후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면 엄마가 현관문 열어 웃으며 반겨줘, 사달라면 엄마 몰래 다 사주는 아빠 있어, 게다가 양가 조부모님들 모두 살아계셔서 넘치게 사랑받으며 크고 있으니 그동안 딱히 인생의 쓴 맛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 상황이 하늘이 주신 기회인 듯 반갑고, 물총을 낚아채 가 망가뜨린 그 친구가 은인인 듯 고맙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 육아의 한 축은 아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기'가 되었다. 사달라는 거 바로 안 사주기, 먹고 싶다는 거 바로 안 주기, 해 달라는 거 바로 안 해주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매일 할 일을 적은 후 그것의 성취도에 따라 용돈을 지급했다. 그마저도 반은 저금용, 나머지 반의 반은 기부용으로 원천 징수한 후에 줬다. 365일 중에 5일 있을까말까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는 날은 보너스 차원으로 원천 징수 없이 500원을 주기도 했다. 그럼 하루에 적으면 200원, 많으면 1000원 이상도 벌 수 있었다. 그걸 모으고 모으고 모아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는 날 아이들은 판매 실적 1위를 한 경력 3년 차 세일즈맨의 모습 같다. 후에 육아서를 읽고,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며 그것이 '만족 지연' 훈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명 '마시멜로 실험'으로 대변되는 만족 지연 능력은 즉각적인 만족이나 작은 보상을 미루고, 장기적이며 더 큰 보상을 위해 인내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의지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만족 지연 능력은 가정 환경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등 환경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고 싶은 게 없어요."
한 때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경찰도 되고 싶고, 선생님도 되고 싶고, 대통령도 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많아서 고민인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가장 큰 원인으로 결핍의 부재를 들 수 있겠다.
뭐든 많아도 너무 많고, 어쩐지 쉬워도 너무 쉽다.
무엇을 향한 열망은 불가능의 정도에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다. 그런데 말 한 마디로, 손가락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이 쉽게 내 손 안에 들어오니 누가 굳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싶겠나.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준다. 무언가 하나를 얻기 위해 가슴에 품고 애태우는 시간.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예를 들면 매달 마지막 날 저녁, 아이들과 이면지 한 장씩을 들고 모인다. 그러고 나서 다음 달에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내려간다. 처음 아이들은 종이 한 장이 모자랄 정도로 거창한 목표와 실현 불가능한 희망 사항을 빼곡하게 썼었다. 물론 나는 그저 응원의 말과 하이파이브를 전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가 나를 믿어주는구나 싶어 알찬 한 달을 보낼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한 달 후, 목표했던 바 중에 한 가지라도 꾸준히 했으면 다행이다. 나는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아이들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빠르다는 것에 놀라고 그동안 자신이 무얼 했는지 돌아보며 당황했다. 야심찼던 자신의 계획이 명백히 실패했음에 버럭 화를 내기도 했고, 다소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다른 집 애들은 매일 또는 매주 '그냥' 용돈을 받는다며 몹시 억울해하며 울기도 했다. 그 모습이 어딘지 익숙하다 싶어 되짚어 보니 마치 내가 처음 깁밥 싸기에 도전하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엄마가 처음 김밥 쌌을 때 어땠는지 알아? 밥은 왕창, 달걀이랑 오이는 두 개씩. 다른 재료도 하나 빠짐없이 다 넣고 말았어. 그랬더니 진짜 팔뚝만한 김밥이 된 거야. 썰기도 전에 이미 옆구리가 군데군데 터져버려서 비빔밥처럼 섞어 먹었지."
아이들은 뚱뚱하고 너덜너덜했던 나의 김밥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낄낄대며 웃고는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비로소 더 나은 내가 되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하니까 되네?"하는 작은 성공 경험이었다. 그 후 아이들은 지난한 과정을 통해 조금은 힘들게 이룰 수 있는 목표와 희망 사항을 적었고, 아이언맨 피규어와 전동 물총, 복싱 로봇 등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6개월 째, 첫째 아이의 주변에는 수륙 양용 자동차가 둥둥 떠다닌다. 밥 먹다가도 수륙 양용 자동차, 길 가다가도 수륙 양용 자동차, 책 읽다가도 수륙 양용 자동차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수륙 양용 자동차 사진과 동영상을 같이 보며 감탄하는 것 뿐이다.
배우이자 무술가였던 이소룡은 생전에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천 가지 기술을 아는 사람보다 한 가지 기술을 천 번 연습한 사람이 무섭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천 번, 만 번 연습해야 할 기술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다. 왕왕초보에서 왕초보가 되기 위해, 왕초보에서 초보가 되기 위해.
실패 레벨 0에서 레벨 1이 된 첫째 아이는 그 다음해 다시 도서관 이벤트에 도전했다. 그리고 지난 해와 비슷한 모양의 새 물총을 받았다.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으려고 자랑도 하지 않고 가방 깊숙이 넣었다. 새 물총과 함께 무사히 집에 도착한 첫째 아이는 지난 실패를 날려버리려는 듯 물총을 마구 쏘아댔다. 물총이 불량이었던 건지, 첫째의 분풀이가 지나쳤던 건지 새 물총은 겨우 20분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건 성공일까, 실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