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엄마 경력 12년 차다. 어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우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하기에는 멈칫하게 된다. 그 밑바닥에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두껍게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2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이의 첫 번째 학부모 상담날이었다.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로 둘째 아이의 자리에 앉아볼 수 있었다. 나 때보다 교실도 작고, 책상도 작고, 학생수도 적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둘째 아이는 모범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과제도 열심히 하고 적극적이며,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아이가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할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선생님은 들고 계시던 몇 장의 종이들 중 학기 초에 내가 써냈던 가정환경조사서를 맨 앞으로 가져오셨다. 그러더니 사뭇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셨다.
"저, 이거 읽다가 조금 놀랐어요. 제가 15년 동안 학교에 있었는데 이런 아이는 처음이에요. 00이가 입학하기 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안 다녔다고 쓰셨더라고요. 00이 형도 있던데 그럼 계속 둘을 집에서 돌보신 거예요?"
"네."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아니 왜, 어떻게 그러셨어요?”
0세부터 받아주는 어린이집과 쫌 큰 애들이 가는 유치원, 그리고 세계 최고의 보육 수준을 자랑한다는 우리나라의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 학원 문턱도 넘어본 적 없다니. 교사로서, 같은 엄마로서 그저 놀람의 연속이던 선생님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한숨 같은 말이 새어 나왔다.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사회성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나는 주택에 살고 있는데,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맞은편에 유치원이 하나 있다. 몇 년 전 어느 화창한 날이었다.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놓고 환기를 하는데 어디선가 구슬픈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선생님, 똥 다 쌌어요. 선생님, 똥 다 쌌어요."
아이는 20분이 넘도록 같은 말을 했다. 마치 녹음본을 틀어놓은 듯 감정이나 높낮이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내 신경을 곤두세웠. 유치원에 전화를 해서 알려줘야 하나, 내가 달려가서 도와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아이를 구하러 온 듯 아이의 호소가 끊어졌다. 놀라운 일은 그때까지도 아이는 울지 않고 같은 속도와 톤으로 "선생님, 똥 다 쌌어요."를 반복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요즘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 반드시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이유인 '사회성 발달'과 관련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직 화장실 뒷처리도 혼자 못하는 애들을 모아놓고 사회성 발달을 운운하기에는 여러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사전적 의미의 사회성은 이렇다.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인격, 혹은 성격 분류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로,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따위이다.'
아마 우리는 '대인 관계의 원만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유치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두루두루 사이좋게 잘 지내기. 내 장난감을 너무 양보만 하지 말기. 그렇다고 친구들 것을 뺏지 않기.
조금 불편한 질문을 해보려 한다.
"당신의 자녀는 얼마만에 사회 생활에 적응했었나요?"
"그들이 정말 사회 생활에 '적응'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일 년 넘게 숨 넘어가도록 울면서 유치원 생활에 적응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어왔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첫날부터 웃으며 등원해 엄마의 시름을 덜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세상 전부인 엄마가 사라지는 것 같아, 혹은 나를 버리고 떠나는 것 같아 불안해하며 목놓아 운다. 필사적으로 매달려 우는 아이를 놓고 발길이 떨어지는 엄마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아이와 엄마, 나아가 이 사회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시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이를 악문다.
"00아, 엄마가 이따가 데리러 올게. 사랑해."
울면서 집에 돌아온 엄마는 죄를 짓는 것 같아 한동안 몹시 괴로워한다. 내가 지금 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이게 맞나? 혹시 아직도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가서 데리고 올까? 그러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는다. 이 고비를 잘만 넘기면 아이도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고 웃으며 안녕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위해 못할 일이 무엇이랴.
다행히 아이들의 대부분은 언젠가는 울음을 그친다. 아무리 울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적응인 듯 적응 아닌, 포기인 듯 포기아닌, 그런.
원컨대 오해는 말라. 나 역시 보내야 하는 사람은 보내야 하고, 보내고 싶은 사람은 보내도 좋다고 생각한다. 절대 '집에서 놀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12년 째 해오고 있어서 잘 아는데 전업 주부는 결코 집에서 놀기만 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타령을 하시겠다면 전업 주부로 한 달만, 아니 딱 일주일만 살아보라고 등떠밀고 싶다. 아무리 공들여봐야 본전인 집안일들을 하면서 야생동물처럼 날뛰는 아이들까지 돌본다면 당신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메타인지를 발휘해 보라. 혹시 이 세계에 대해 문외한인 당신을 위해 한 마디 하자면, 요즘 아이들 교육은 장난이 아니다.
아무튼 나는 '즤 아빠를 닮아' 낯가림이 유난스러웠던 아이들이 조기 사회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악을 쓰며 우는 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내 아이의 손을 잡고 그 고통의 강을 건너기 싫었다. 내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 충분한 관찰과 고민의 시간 없이 마치 초등학교 입학 전 사회성 발달을 위한 당연한 수순인 것 같은 분위기도 썩 내키지 않았다. 맘카페에 올라오는 단골 질문도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가 아니라 "어린이집 언제 보내셨나요?"다.
둘째 아이가 잘 걷고 뛰기 시작하니 놀이터 투어가 한결 편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할 거 다하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별 것도 아닌 걸로 깔깔대고 놀고 있으면 산책 나온 동네 주민을 만나곤 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는 첫마디는 벡퍼센트 답이 정해져 있는 밸런스 게임 같았다.
"오늘 유치원 안 갔나 보네?"
처음 얼마간 아이들은 아이들다웠다.
"유치원 안 다녀요."
열에 아홉은 놀라며 심각해졌다. 유치원에 안 다닌다니, 그게 무슨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같은 소리야?
얼마 후 아이들은 같은 질문에 다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오늘 유치원 안 갔나 보네?"
"네."
박수박수. 그 정도면 사회성, 뭐, 나쁘지 않은 걸로.
지금에 와서는 24시간 출퇴근이 따로 없었던 나의 육아 방식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는 이가 더러 있다. 하지만 그때는 여러모로 나의 행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부류였다. 특히 내 선택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원하는대로, 믿고 싶은대로, 떠들고 싶은 대로 두는 편이다. 그래도 한 번씩 버럭하긴 했다. 아니, 엄마가 애 좀 키우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야.
"저러다 애가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면 어쩌려고 그래? 왕따라도 당하면 어쩔 거냐고?"
"쯧쯧. 엄마 잘못 만나서 애들이 고생이 많다."
"그래서 대체 하루 종일 애들이랑 뭐 한대?"
별 거 안했다. 크게 말하자면 '먹기와 놀기'와 '독서'를 했다. 오늘은 뭐 먹을까, 뭐 하고 놀까, 무슨 책 읽을까가 최대 고민 거리였다.
먼저 먹기. 다 해먹였다. 밥이고 간식이고 굳이 다 내 손으로 직접 해먹였다. 중학교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한창 사회 생활을 하다 요리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겠다 싶어 뒤늦게 한중일양식 자격증을 따고 취업도 했다. 하지만 매 시간 말통으로 나가는 손도 안 댄 음식 쓰레기를 계속 모른 척 할 수 없어 뛰쳐나왔다.
다음 놀기. 원없이 놀게 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주 5일 등교를 해야 하는데 그때가 아니면 언제 하루종일 아무 걱정없이 놀아보겠는가. 들로 산으로 도시락 싸들고 애들과 놀러다니는 나를 보고 그러다 애들 초등학교도 안 보내고 홈스쿨링 하는 거 아니냐며 합리적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육아가 체질인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고 적막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애들 둘 다 학교에 가고, 신랑은 일하러 가고 드디어 혼자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지막 독서. 앞서 말했듯 그때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준 덕분에 지금 아이들은 혼자서 책을 읽는다. 정말 있는 그대로 하루종일 먹는 시간, 자는 시간 빼고 책만 읽어준 날도 허다하다. 온 동네를 탐험하다 들어와 저녁을 먹고는 한바탕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러고 나서 쉽게 가시지 않는 여흥을 진정시킬 겸 우리 네 식구는 벌러덩 누워 어제도 읽었고, 그제도 읽었던 책을 또 읽고 했다. 이제 자야지하며 불을 끄려 하면 "한 권만 더, 하나만 더 읽고." 하던 꼬꼬마들. 내일 점심은 뭘 싸가나 즐거운 고민을 하며 바닥난 배터리를 충전하듯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보면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자, 결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직접 키우자는 말이 아니다. 해본 사람으로서 초강력 추천이라는 말은 안 나온다. 50 대 50이다. 다만 사회성 발달을 위해서 유치원에 보낸다는 말을 하기 전에 가정이야말로 우리가 최초로 만나는, 최소의 사회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한다.
지금껏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 애들처럼 사회 생활 경험없이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본 적이 없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을 텐데.
댁의 아이들은 어때요? 저희 애들은 지금은 아니지만, 1학년 때는 방학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책가방 메고 왔다갔다했어요. 학급 임원과 전교 학생회 임원을 도맡아 하고, 담임 선생님들마다 전에 없는 최고의 모범생이라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고 칭찬하세요. 지금요?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에요. 아, 좀 더 키워보라고요.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유아기가 지난 뒤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원제 Hold on to your kids)>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사회성과 독립성을 이유로 아이를 너무 일찍 냉혹하고 경쟁적인 또래들의 세계로 내모는 부모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출간된 이 책의 세 번째 장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가 아니다'라는 다소 과격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동 발달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저자 고든 뉴펠드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이유로 부모의 자리를 또래에게 내어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부모와의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는 아직 우정이 존재할 수 없으며 또래들과 어울린다고 해서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가 아닌 믿을만한 어른라는 저자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마치기 전에 '내 식대로' 애들을 끼고 살 수 있었던 또 다른 결정적 이유도 짚고 넘어가겠다. 결혼 후 2년 터울로 아이들을 낳고, 잠이 없는 아이들 덕분에 좀비처럼 살았던 나를 살린 건 바로 슈퍼히어로인 나의 엄마와 아빠였다. 또 오직 자식들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하셨던 시부모님 덕분에 당장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먹고 살 수 있는 절박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나 혼자 키운 게 아니었네. 그때도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