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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베 Aug 11. 2024

가족 사진은 없다

6 가족 사진

추달호는 무슨 맘으로 한사코 가족사진을 돌려주려고 했을까? 아들에게 유언하면서까지 말이다. 그가 없으니 그 의문은 영원히 풀 길이 없어졌다. 흑백 사진을 간직하려고 아등바등했을 추달호를 생각하면 징글징글하다 못해 눈시울이 더워진다. 사진 한 장 찍은 적 없다던 그가 그 긴 세월을 무슨 수로 가족사진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경찰에 잡히고 조사받으면서 무수히 얻어터졌을 거였다. 


규율부장이나 동료들에게도 보복 폭행을 당했을 거고. 집도 절도 없던 그가 아닌가. 추달호가 가족사진을 손에서 놓아버릴 순간은 그의 인생에서 차고 넘쳤으리라. 교도소 수감생활을 할 땐 어디다 감췄을까? 쫓기듯 허위허위 기어든 탄광촌에서는 살아남으려고 버둥댔을 테니 알량한 가족사진을 꼬불치기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추달호가 살아냈을 인생 고비마다 가족사진을 보관하려고 애쓰는 그를 그려볼수록 권소운은 이 세상에 그런 인간은 두 번 다시 없으리란 생각에 사로잡혔다. 가족사진을 챙길 때마다 추달호는 어김없이 햇병아리 기자 권소운을 떠올렸을 거였다. 



가로등이 불을 밝힌 북면교에서 권소운은 걸음을 멈추었다. 엽서 봉투에서 꺼낸 가족사진을 그는 조심스레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내와 아기, 젊은 권소운이 환한 가로등 빛에 드러났다. 그러나 세 사람은 점점이 흩어졌고, 그 자리엔 어느새 추달호가 어른댔다. 권소운은, 추성영과 헤어져 탄광 생활사박물관을 걸어 나오면서 가족사진이 추달호의 분신 같다는 생각을 줄곧 했었다. 그의 유품이라 여기고 간직할까 했었다. 그러나 그는 죽었고, 세상에 없다는 점이 못내 걸렸다. 추달호 없는 가족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추달호의 손길이 안 닿는 가족사진은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쯤에서 추달호에게 덮어씌운 가족사진 굴레를 벗겨줘야 마땅했다. 미련없이 생각을 바꾼 권소운은 개울을 굽어보며 손바닥을 뒤집었다. 가족사진이 나풀나풀 개울로 떨어졌다. 추형, 잘 가시오. 별 볼 일 없는 사진 간직하느라 애썼소. 이제 이 빌어먹을 가족사진일랑 훌훌 털어내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소. 당신이 없으니, 사진도 흘러 흘러 제 갈 길로 가도록 말이오. 


권소운은 물살에 실린 사진을 눈으로 좇았다. 불현듯 가슴이 휑하니 써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힘들지만, 그쯤은 참아내야 했다. 사진이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가로등을 뒤로 하고 북면교를 건넜다. 개울을 따라 걷는 권소운은 이내 어둠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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