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베 Aug 24. 2024

감옥의 안과 밖

고상필은 어떤 사람?

고상필이 어떤 사람이라니? 

권 형사가 심문하듯 물었다. 이참에는 버스에서 내려 초원아파트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버스정류장 근처 편의점 파라솔에서 튀어나왔고, 곧장 나를 치킨집으로 이끌었다. 출판사 문제로 서울을 다녀오던 참이었다. 고상필은, 명성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받는 현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경차 완성차 업체인 명성기업 노동자들은, 원청이 K 자동차임에도 육백여 명 전원이 비정규직이었고, 정규직 전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급기야 며칠 전엔, 사측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조합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상필은 하루가 멀다고 명성기업 농성 투쟁 현장에 들락거렸고). 고상필과 명성기업 건을 급히 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하며 내려왔는데, 권 형사가 막무가내로 물음을 던졌다.


 고상필은 어떤 사람이냐고? 나는 막막했다. 내게 한 인간을 해부할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차라리 돈을 잘 버냐, 못 버냐, 를 궁금해했다면 모를까, 어떤 인간이냐니?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라고 따지고 드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나. 무엇보다 고상필이란 인간을 판단할 자격이 내겐 없었다.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던 날, 권 형사는 똑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나. 고상필은 어떤 사람이냐고. 그는 고상필이 어떤 대학을 나왔고, 어떤 여자와 결혼했으며 심지어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것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날, 나는 무어라 답했던가. 건강 상태는 좀 안 좋은 것 같다고, 허리가 아프다고 오래전부터 그랬고… 그렇게 심드렁하니 주절대다 불현듯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선한 친구’라는 답변이었다. 내가 아는 직업혁명가란, 거칠게 말하자면, 해고는 살인이다! 고 절규한 S 자동차 노동자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답게 생존할 수 있도록 싸우는 이를 뜻했다. 나는 그 행위를 선하다고 보았던 것이고. 흔히 종교적 선행을 일컫듯,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란 광의의 뜻으로 풀이했달까. 선한 친구라… 권 형사도 어이가 없었던지 내 말을 따라 읊조렸고, 더는 내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내게 정색하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작가님, 고상필이 말이에요, 어떤 사람입니까?”

권 형사는 어쩌자고 고상필에게 집착하는 걸까. 나한테 묻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그를 체포하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그를 붙잡아서 당신은 어떤 인간이냐고? 얼굴을 맞대고 묻는 게 좋지 않을까. 나는 그제야 권 형사에게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알아챘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가 고상필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나로서는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고상필의 어떤 점을 알고 싶은 걸까. 한가하게 치킨집에서 나와 입씨름하기보다는 당장 고상필을 체포하러 나서는 게 옳지 않을까. 고상필이 명성기업 농성 투쟁 현장에 관여하고 있음을 권 형사가 모를 리 없었다. 그를 체포해서 직접 알아보면 될 일 아닌가. 


그것이 경찰인 권 형사의 본분이고. 혹시 그는 고상필의 인간 됨됨이에 대해 알고 싶은 걸까. 내가 선한 인간이라고 한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다. 나는 직업혁명가 고상필의 삶을 내 식으로 그렇게 해석했을 따름이었다. 권 형사가 어찌 받아들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권 형사가 고상필의 인간 됨됨이를 궁금해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형사가 할 일이 없어 수배자 인간 됨됨이까지 헤아리며 임무를 수행하겠는가. 문득, 권 형사가 ⌜불꽃 영혼⌟을 읽었음을 나는 기억해냈다.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불꽃 영혼⌟을 접한 권 형사를, 선하다는 인물평만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을 터였다.


“고상필은.” 나는 힘주어 말했다. “직업혁명갑니다.”

기왕 ⌜불꽃 영혼⌟을 맛본 권 형사를 대접한다면 에둘러 가기보다는 정면 돌파가 나았다. S 자동차 파업 현장에서 잡혔다고, 노동운동가니, 뭐니 해가며 설명해봤자 군더더기일 뿐이었다. 권 형사가 명쾌히 알아듣도록 직업을 밝히는 게 가장 간편했다(나로서는 직업혁명가 말고는 고상필에게 걸맞은 직업을 찾을 수 없었다). 21세기에 레닌이나 트로츠키를 예로 들 수는 없지 않나.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해놓고도 왜 이리 공허한지 모르겠다. 직업혁명가라니. 회사원이나 공무원도 아니고 직업이 혁명가라니, 권 형사에게 씨알이 먹힐 소린가. 내가 아는 한, 우리 사회에서 고상필 같은 직업혁명가는 실제로도 손으로 꼽을 만큼 극소수다. 그러니 권 형사가 직업혁명가를 모른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직업혁명가라뇨? 그럼, 혁명을 직업으로 한다는 건가요? 거, 참 희한한 직업이네요. 혁명이라는 게 그게 말하자면 세상을 확 뒤집어엎자, 뭐 그런 거 아닌가요?”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나는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권 형사와 닭 다리를 씹어가며 직업혁명가에 대해 토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나는 고상필이 선택한 직업혁명가라는 삶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니었다. 노동자들 사이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등을 빚고 있고, 진보정당은 지리멸렬한 현실이 아닌가. 다만, 나는 혁명을 염원하는 고상필의 선택을 존중할 따름이었다. 


“저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건데,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 뭐 그런 일 하는 겁니까? 직업혁명가라는 게?”

“그거야 철 지난 교과서 얘기고요.” 

나는 웃음으로 넘겼다. 대기업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내치는 게 현실인데 그게 가당키나 하냐고 대꾸하려다 가까스로 참았다. 노동운동 담당 형사 앞에서 고상필 얼굴에 침 뱉는 듯해서였다.

“고상필이 직업혁명가라. 이러다 제가 선한 인간 잡는, 악질 순사 노릇 할까 봐 겁나네요.” 생맥주를 들이켠 권 형사가 말했다. “작가님, 형사 처지에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 딴에는 고상필이란 사람을 이해하려고 나름 애써봤걸랑요. 헌데, 도무지 파도 파도 모르겠더라고요.”

“고상필을 이해하려고 했다고요?”


맥주잔에 손을 대던 나는 권 형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범법자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형사라니.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나는 거듭 그가 ⌜불꽃 영혼⌟을 읽었음을 되새겼다. 그 책을 읽고서도 인간 고상필을 더 알고 싶어 했다고? ⌜불꽃 영혼⌟에 등장하는 고상필만으로 성에 차지 않다는 건가. 그 책에 인간 고상필 영혼을 세밀히 담아내지 않아서? 만약에 그랬다면 그는 ⌜불꽃 영혼⌟에 과도한 기대를 걸었음이 분명했다. 고상필을 이해하려 했다니? 그는 고상필에게 뭘 원하는 걸까? 권 형사는, 단순히 고상필을 잡아들이는 데 만족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해라기보다는 노동운동가는 처음인 데다…뭐라고 말씀드리기 무엇합니다만 약간의 호기심도 있고 해서…”

“호기심요? 형사가 범법자를 체포하면 그만이지…” 

거기까지 말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권 형사가 힘겨운 고백을 했음을 알아챈 탓이었다. 호기심이라고 포장했지만, 그는 진심으로 직업혁명가 고상필의 삶이 궁금했던 건 아닐까. 이쯤에서 권 형사의 고백을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할까. 만약에 노동운동가 고상필에 대한 사적인 관심이라면? 그래서 ⌜불꽃 영혼⌟을 읽고, 걸핏하면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걸까. 노동운동가 고상필의 삶이 궁금해서? 어쩌자고 고상필이 그런 삶을 사는지 알아내려고? 나는 권 형사가 왜 그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그가 고상필에게 관심을 기울인 게 사실이라면 직업혁명가의 뜻풀이도 달라져야 하리라.


“저로서도 권 형사님이 고상필에게 호기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몹시 흥미롭네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 두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직업혁명가라는 게 그래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삼키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대부분 일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잖아요. 이를테면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사,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계산원 아주머니들이나 콜센타 상담원들, 요즘은 감정노동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러니까 일상에서, 내 곁을 스치는 중년 여자가, 늦은 밤 종종걸음을 치며 연립주택 반지하로 들어가는 여자가, 그런 일들을 할 수도 있잖아요. 


광화문 사거리 건널목에 서 있는 늙은 남자가 아파트 경비원으로 스물네 시간 맞교대를 하고 퇴근하는 길인지, 편의점에서 나오는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고 오 년째 시급 알바로 살아가는지, 박카스를 사 먹는 중년 남자가 졸음과 씨름하며 목숨을 건 운전을 하는 트럭 기사인지, 우리는 타인의 삶을 알아채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스쳐 지나가잖아요. 저는 직업혁명가라는 게 중뿔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직업혁명가란, 타인의 삶이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남들이 침묵할 때, 남들이 눈 감고 걸어갈 때, 자, 봐라,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새벽부터 빌딩 청소하는데 백삼십만 원 받고는 살기가 힘들지 않냐? 하고 외치는 사람이라는 거죠…”

“좋습니다!” 내 말을 자른 권 형사가 갑자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런 사람이 무슨 맘으로 S 자동차 사태에 개입했습니까?”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질문이었다. 여태껏 고상필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관심만 드러냈던 권 형사가 아닌가. 그래서 직업혁명가도 이웃사촌 대하듯 서민들 삶을, 예를 들어 풀어놓았던 것이고. 나로서는 방심했다가 한 방 된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호기심 때문이라던 그가 어쩌자고 느닷없이 S 자동차 사태를 끌어들인 걸까. 


“고상필이 S 자동차 공장, 불법 점거 사태에 관여했거든요.” 권 형사는 작심한 듯 계속해서 말문을 이어갔다. “제3 자 개입금지라고, 아시겠지만 S 자동차 근로자들이 공장 점거하는 데 개입했단 말입니다. 그건 명백히 불법 행동이걸랑요. S 자동차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말이죠. 불법 파업 참가자들이 불법 점거한 공장에, 제3 자인 고상필이 잠입해서 배후 조종을 했다, 이거죠. 제가 궁금한 건 이겁니다. 자기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무슨 속셈으로 끼어들었을까요? 불법 행동임을 뻔히 알면서, 감옥 갈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랬냐 이겁니다.”

“말했잖습니까, 직업혁명가라구요.”

나는 차분해지려고 애썼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권 형사와의 대화가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는, 고상필이 무슨 속셈으로 S 자동차 파업사태에 개입했는지, 어째서 그가 직업혁명가로 살아가는지 권 형사와 입씨름할 생각이 없었다. 까닭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권 형사에게 빌딩 청소하는 사람이 백삼십만 원으로는 사는 게 힘들지 않냐고, 외치는 사람을 직업혁명가라고 빗댔던 게 몹시 후회스러웠다. 사적인 관심으로 위장한 권 형사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가 괘씸했고, 소박한 답변으로 응대했던 스스로가 더욱더 마뜩잖았다.


“고상필이 멀쩡한 대학을 나왔잖아요. Y 대학 하면 명문 대학인데, 기자를 하든, 대기업에 입사하든,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을 텐데, 어째서 C 시까지 와서, 성진테큰가요, 거기에 위장취업하고, 이번에는 S 자동차 파업사태에 관여해서 인생 험하게 사냐, 이거죠. 부인도 이런 일 한다고 들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 이거죠. 남의 일에 끼어들어 자기 인생을 말아먹는 게 어째서 선한 사람이라는 건지, 도통 접수가 안 되걸랑요.”

“그거야 기회가 되면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시죠. 나도 정말로 궁금하네요. 고상필이 왜 S 자동차 파업사태에 개입했는지.”


“아니 할 말로 고상필이 배후 조종해서 뭐가 나아졌나요? 경찰 특공대 투입해서 한방에 박살 났잖아요. 말로는 생존권 사수하기 위해 그랬다는데, 안 될 거 뻔히 알면서 그 많은 사람 직장에서 쫓겨나고…”

“직업혁명가니까요.” 나는 권 형사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혁명가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니까요. 노동자들 생존권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 바로 직업혁명가라니까요.”

“아무리 직업혁명가라도 부모 형제가 있지 않나요?”


“권 형사님, 부모 형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는 날 선 감정을 누르고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고상필에게도 농사꾼 어머니가 있고,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동생이 있다고 퍼부어주려다 말을 삼켰다. 기왕 내친걸음 이쯤에서 물러나서는 죽도 밥도 안 되지 싶었다. 권 형사와 대거리를 하는 수밖에. “권 형사님하고 생각이 다를지라도 한 번 들어보세요. 재벌 건설회사 회장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때 제가 생각한 게 뭔지 아세요(취기 탓만은 아니었다. 권 형사가 동의하건 아니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인 울분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데 막을 도리가 없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자고 작심했구나, 였어요. 실제로 아파트값 올려준다, 4대 강이다 뭐다 해서 쑥대밭을 만들었잖아요. 한마디로 야만 사회가 된 거죠. 이를테면 직업혁명가는 그 지점을 지적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다들 돈의 노예가 돼서 옆 사람이 죽어 나가도 모를 때, 이러면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이다, 하고 구조신호탄을 쏘는 존재라는 거죠. 갱도 안 카나리아 같은 존재랄까요.”


“좋아요. 구조신호탄, 카나리아 다 좋다구요.” 맥주 거품이 번진 입가를 훔친 권 형사가 빠르게 말했다. “⌜불꽃 영혼⌟을 보면, 성진테크 파업에서 두 사람이 죽잖아요? 분신한 지회장만 보자구요. 백 프로 책임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제 소감은 그렇걸랑요. 평범하다면 평범하게 살아온 지회장을 의식화해서 투사로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게 고상필 아닌가요? 구조신호탄에다 카나리아라는 직업혁명가가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다니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감옥의 안과 밖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