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작고하신 '고우영' 선생님의 '대야망'이라는 만화이다.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한국계 일본 무도가의 일생을 그린 책이었다. 아마도 8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는 형의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몇 개의 만화책 중에 가장 먼저 손이 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교에서 겨우 깨우친 글자에 흥미를 가졌던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애국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재미있었기 때문에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첫 번째 책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시간과 여력(돈)만 있으면 만화책을 읽었다. 때로는 만화방에 쪼르륵 달려가기도 하였고 때로는 친구에게 알랑방구를 껴가며 아부해서 빌려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돈 없다며 한숨짓는 엄마에게 때를 써서 얻은 용돈으로 마음에 드는 만화책을 사서 보기도 하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만화책에 대한 관심은 소설책으로 넘어갔다. 지적 허영심에서 '데미안'을 들고 다녔고 '이방인'의 표지가 잘 보이게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했다. 물론 야한 내용에 눈이 뒤집혀 몰래 어른들이 보는 무협지에 정신이 팔린 적도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학교 개가식 도서관과 1시간 이상 걸리는 통학시간 덕분에 일주일에 3~4권의 책을 보기도 하였다. 80년대 대학가는 최루탄과 투쟁으로 들끓었고 그런 환경은 사회과학과 해방신학에 대한 책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생존을 위한 야근과 스트레스가 가득한 회사 생활 속에서 '문화생활비'란 명목의 복지비용을 전용하여 구입한 몇 권의 책들이 30년 간의 전쟁터에서 작은 위안과 평온을 선사해 주기도 하였다.
60살을 코 앞에 두고 남보다 조금 빠른 조기 퇴역을 당해보니 직장으로부터의 해방이 꼭 축복만은 아니었다.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와 경제적 무게감이 조금 줄어듬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혼란이 닥쳐왔다. 가장 큰 문제는 갈 곳이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었다. 이런 심리적 충격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멍한 삼 주일을 보내다 처음 찾아간 곳은 동내 도서관이었다. 시원하고 전기도, 와이파이도 공짜이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책이 나를 반겨주었다. 두서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들은 생각은 '재미있다, 이건 뭐야,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등과 같은 감탄과 더불어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 아쉬움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나의 작은 꿈은 그렇게 씨가 뿌렸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도 책을 써보고 싶다는 희망이 조금씩 더 크게 자라나게 되었다. 그러나 두려웠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문외한이 무슨 책? 사람들의 비웃음이 두려웠다. 고민만 깊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에서 '브런치스토리'를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우연으로 치부하기 싫었다. 이것은 인연이고 운명일지 모른다고 자신에게 인식시켰다. 예전에 블로그에 끄적거렸던 몇 개의 글을 가져와 다듬고 깎고 보태여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 응모하였다. 최소한 두 번 이상은 탈락할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다행히도 한 번에 작가로 승인이 되었다.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웠다. 그리서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시, 수필, 소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써 보았다. 많지 않지만 읽어주시는 분들이 생기고 칭찬해 주는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이 뿌려주신 칭찬과 격려는 시원한 생명수로 또 맛있는 영양분이 되어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이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으로 점점 커지게 되었다.
나의 꿈은 나만의 책을 발간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도 유명한 작가도 아니다. 그저 나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진솔한 나만의 책을 발간해 보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누군가 몇 사람은 '아! 재미있네.'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책이면 정말 좋겠다. 오늘도 나의 아침은 도서관에서 낡아빠진 노트북을 켜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다. 글은 나에게 희망이 되고 꿈을 꿀 수 있는 기쁨이 되어준다. 나의 글도 책이 되고 희망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씨로 뿌려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