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아의 멸망
신법이 적용되고 5일이 지났을 때 한국에서 신법에 의한 최초의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피고인 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유영수’라는 자였다. 죄목은 폭행이다. 유영수는 부모님에게 받은 유산으로 잠실에 100억대의 최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재벌 2세였다. 유영수는 유산으로 강남에 작은 상가를 매입하여 커피숍을 창업하였고 하루에 1시간 정도남 느긋하게 출근했다가 퇴근하여 술과 유흥을 즐기는 한량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고 늦게 자식을 본 부모님의 지나친 보호로 인해 지독히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더군다나 작은 아버지가 경찰 간부로 있었기 때문에 잦은 폭력 사건에도 대부분 쉬쉬하거나 돈으로 무마시켜 한 번도 구속되거나 문제 된 적이 없었다. 그의 대부분의 폭력은 술집이나 유흥업소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주인들이 더러워도 참아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러한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커피숍에서 일어났다.
그날도 유영수는 오후 1시가 한참 넘어서야 커피숍에 출근을 했다. 전날 강남의 술집에서 오랜만에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여성과 부킹이 되었다. 유영수는 자신의 명품 시계와 BMW차 키를 슬그머니 탁자에 내려놓고 여성이 넘어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여성은 유영수의 의도대로 홀딱 넘어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 커피숍에 식약청 위생 검사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고 오기 싫은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 출근했던 것이었다. 역시나 위생과 직원들은 유영수의 봉투를 받고 사소한 것 몇 가지만 지적하고 조용히 가버렸고 유영수는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기분이 많이 상해있던 상태였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담배를 꺼내 들고 커피숍 바로 옆의 골목으로 들어가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할 때, 갈라진 작은 골목에서 누군가 매우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유영수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거슬려 화풀이라도 하려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5m 정도 접근하자 남자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리기 시작하였다.
“형! 형만 믿으라며? 그냥 나오면 어떻게 해? 최소 영업정지 한 달 만이라도 때리고 나왔어야지. 뭐? 같이 간 계장님이 직접 확인하고 그냥 가자고 했다고? XX! 계장 꽉 잡았다더니 뭐야. 거짓말한 거야? 형 돈 받아먹었지? 맞지?”
유영수는 머리가 좋은 놈은 아니었지만 눈치는 매우 빠른 놈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매우 급하고 폭력성이 강한 놈이었다. 가만히 대화를 듣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골목길에 떨어져 있던 소주병 하나를 발견하고 손으로 병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통화 중인 남자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쳤다.
“XX새끼. 식약청에 찌른 놈이 너였어? 감히 내 가게를 모함해? XX 놈 뒈져봐야 세상 무서운 줄 알지!”
소주병은 남자의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주고 산산이 깨져 사방으로 파편을 날려버렸다. 유영수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쓰러진 남자를 계속해서 발로 차고 밟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달려와 말리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아마도 죽었을 것이었다.
경찰이 오고 유영수는 곧바로 구속되었다. 기존이었다면 아마도 비싼 돈으로 고용한 변호인단이 불구속 수사로 만들어 약식기소 혹은 합의를 통한 벌금형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신법이 발효된 이후 모든 사건은 집행관에게 검열을 받아야 했고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박&서 법률사무소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구속명령이 떨어졌던 것이었다. 티탄 제국이 공표한 함무라비 법률에 의하면 타인이 신체 훼손에 대한 것은 법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조건 구속이 원칙이었다. 유영수는 변호사를 이용하여 집행관에게 돈으로 매수하려 했으나 오히려 변호사만 억울하게 태형을 받고 변호사 자격까지 취소되어 버렸다.
유영수는 꼼짝없이 재판을 받아야만 했고 오늘이 바로 그 재판 개시일이었다. 재판은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피해자인 남자는 거짓 고발을 이유로 벌금형과 10년간의 사업등록 금지형에 처해졌다. 거기에 자신의 거짓으로 초래된 부상에 대한 치료비도 자신이 부담하도록 판결되었다. 그리고 거짓 고발에 동조한 식약청 관리는 자격 취소 및 태형 10대에 처해졌다. 마지막으로 유영수에 대해서는 함무라비 법전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여 피해자와 동일한 부위에 동일한 상처 및 통증을 주는 수술을 자비로 강제 시행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이 재판 결과에 대하여 말이 많았다.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는 평과 오히려 속 시원하다는 평가가 엇갈렸다. 그러나 공통적인 의견은 이후 발생할 재판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살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발생한 치정 살인으로 범인인 김정술은 아내와 불륜남을 모텔에서 칼로 수십 번 찔러 사망하게 하고 토막을 내서 산에 매장하였다. 김정술의 범행은 불륜남의 아내에 의해서 발각되었다. 남편을 의심하던 불륜남의 아내가 미행을 하다가 범행 현장을 목격한 것이었다. 불륜남의 아내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은 김정술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바로 검찰로 이송하였고 오늘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번에도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던 지구인들은 재판의 결과에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살인범인 김정술에 대한 판결은 당연히 사형이었다. 그것도 살아있는 상태에서 피해자들과 동일한 부위를 토막 내어 사형시키고 모든 재산을 불륜남의 부인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람들은 조금 잔인하다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강력한 법 집행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판결문에 모든 사람들이 의아함과 경악을 경험하였다. 김정술이 부인의 불륜으로 인해 겪은 손해에 대하여 불륜남의 아내가 동일하게 육체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정술의 살인인 그의 아내와 불륜남의 죄로 유발된 것이기 때문에 김정술도 그들의 죄에 대한 피해자이기 때문에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집행관의 논리였다.
지구인들은 즉각 반박하였다. 불륜남이 아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집행관은 남자의 불륜을 ‘배우자로서의 의무 이행 미비’라는 죄목으로 아내가 배상을 하는 것이 옳다며 판결을 번복하지 않았다. 더구나 김정술이 갇혀있는 구치소에서 손해 배상을 위한 행동을 시행하여야 한다는 단서 조항까지 발표되자 모두가 단체로 정신적 쇼크에 빠져버렸다.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단체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불륜남 아내에 대한 판결을 철회할 것을 주장하며 단체행동을 시작하였다. 남성들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하자 사회는 이로 인해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현대 여성의 지나친 자유로움을 경고하며 판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비록 소수였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외계인과 동일한 주장이다 보니 지배계급의 비호로 오히려 점점 더 힘을 얻어갔다. 외계인들은 모든 사태를 단 한마디만 남기고 힘으로 제압하여 버렸다.
‘억울하면 죄를 짓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