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듣는 재미가 있어야 듣지
사람이라는 동물을 일컫는 많은 말들이 있다.
우리 종의 대전제인 호모 사피엔스에서 출발한
다양한 용어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오늘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Homo Ludens, 즉 유희하는,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형 인간이다.
단순히 노는 것을 넘어 창조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는 마치 아티스트와 소비자의 관계 같다.
즐거움을 창조하는 존재와 즐거움을 얻는 존재 모두
우리, 호모 루덴스라는 것이다.
우리는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유희하는 존재다.
그 유희 수단 중 가장 와닿은 것 중 하나가
필자에게는 힙합인 것이다.
가장 많은 즐거움을 준 장르를
가장 많이 듣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힙합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처음 힙합을 접하는 사람도 즐거움을 느낀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자주 들어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처음 듣는 사람들도 즐거워할 수 있는
즐거운 힙합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몇 앨범들을 가지고 왔다.
1. <Lifes Like> by 재지팩트
힙합은 전통적으로 샘플링 기법을 썼다.
이전에 있었던 소리들을 탐구하여
자르고, 늘리거나 줄이고, 다시 섞는
재창조의 과정을 지나 완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힙합의 하위장르로 재즈 음악에서
재즈의 선율을 살리는 샘플링을 한 재즈 힙합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앨범이 그런 클래식한 재즈 힙합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훌륭한 앨범이다.
우리나라 재즈 힙합 불멸의 고전인 앨범.
빈지노가 20대 초반부터 주목받은 이유와,
우리가 8년 넘게 재지팩트의 다음 앨범을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를 보여준다.
재즈 음악의 훌륭한 재창조를 보여주는 비트와
탄탄하고 풋풋한 빈지노의 퍼포먼스는
15년 넘게 우리 귀를 항상 즐겁게 해 준다.
추천곡: A Tribe Called Jazzyfact, ?!. (Feat. DJ Pumkin), 아까워, Mom's Call (Feat. Verbal Jint), 각자의 새벽 (Feat. Dok2, Beatbox DG), Smoking Dreams
2. <Junk Drunk Love> by 리짓군즈
후덥지근한 여름날, 전기세 아까워서 선풍기만 튼 채
햄버거 다 같이 시켜 먹으며 낄낄거리고
이것저것 재미있게 녹음한 흔적이 음악에 묻어난다.
편안하고 헐렁하며, 어딘가 홀아비 내음이 나는 듯한,
그렇지만 저절로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는 음악들이
이 앨범에 꽉꽉 들어차있다.
리짓군즈의 가장 큰 장점은 멤버들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편해지면서 자연스레 리듬을 타게 되는 점이다.
은근한 레이백이 묻어나는 랩들에서 느껴지는
완벽할 필요 없이 즐거우면 그만이라 말하는
리짓군즈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패스트푸드도 레스토랑 음식처럼, 술도 물처럼 대하며,
짧을 수도 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노래하는 이 앨범은 11월에도 그 온기를 나눠준다.
추천곡: (Skit 포함) Junk Drunk Love, Trucker, Surf Shop, 너무나 파라다이스, Hawaiian Wolf, Orange
3. <READMISSION> by 허클베리피
힙합이라는 음악의 형태에 대해
가장 원초적인 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리는
브레이크 비트 위 디제이들의 기교가 더해지고,
관객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80년대 힙합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한 힙합의 가장 고전적인 형태를
가장 현대적으로 보여주는 앨범이 바로
허클베리피의 <READMISSION>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신나는 분위기를
즐겨주면 된다고 발매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앨범 내내 신나고 에너제틱한,
각자 래퍼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클래식한 래핑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는 이 앨범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한국 올드스쿨 힙합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리오 케이코아, 사이드 비, 킵 루츠부터,
앞으로 한국 힙합을 이끌 스카이민혁, 다민이, 허성현까지,
가장 고전적인 힙합의 형태 속 윗세대에 대한 존중이 가득한
한국 힙합 전 세대가 벌인 잔치판에 우린 더더욱 흥겨워진다.
추천곡: STOMP!, 돌대가리 (Rockhead) (feat. Skyminhyuk), Showdown 2024 (feat. Side-B, Paloalto & 99' Nasty Kidz), Tomahawk Freestyle (feat. Dok2), 뉴키즈온더블락 (NKOTB) (feat. 허성현 & SINCE)
4. <AAA> by 릴 모쉬핏
우리나라 힙합 씬 안에서 현재 원탑 프로듀서는
바로 릴 모쉬핏, 그루비룸의 휘민이다.
기존 그루비룸이라는 프로듀서 그룹으로 보인
방향성은 주로 부드러운 R&B였지만
그의 또 다른 자아인 릴 모쉬핏은 달랐다.
그의 내면의 자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그루비룸 활동에서처럼, 미국 메인스트림의
사운드를 차용했지만, 이 앨범은 더 멀리 나아갔다.
무거운 베이스와 강렬하게 퍼져나가는 신시사이저 속
맹진하는 뱅어들의 연속인 트랙들.
그 빠른 트랙들에 자연스레 올라타 활약하는 래퍼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등장했어도 가장 주목받는 것은
자신의 모든 영역을 풀어헤친 릴 모쉬핏임은 틀림없다.
추천곡: Moshpit Only (Feat. Paul Blanco), Yooooo (Feat. 키드밀리, sokodomo, Polodared), A-Team Freestyle (Feat. A$SP Ant, BILL STAX, 미란이), Slatty Slut (Feat. Sik-K), DIE HARD (Feat. REDDY, Swervy)
5. <E> by 에피
음악은 항상 선구자들이 등장해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선구자들은 독보적이다.
그런 독보적 존재의 등장은 항상 설렘을 준다.
그러한 설렘을 느낀 앨범이다.
점점 짧고 강한 음악이 주류를 형성하는 요즘,
드디어 한국 힙합에도 그러한 흐름이 등장했다.
깨질 정도로 큰 신시사이저와 베이스,
케이팝이 뒤틀린 듯, 어딘가 한국적이며 변칙적인 사운드는
한국적인 하이퍼팝의 사운드를 보여준다.
에피가 여기서 더 돋보이는 건 목소리다.
앨범 안에서 상당한 유기성을 보여주는
트랙들과 맞물려 에피의 싱잉은 극한의 청각적 쾌감을 준다.
선구자인 에피가 보내는 초대장의 역할을
이 앨범이 훌륭하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추천곡: down, 코카콜라, put my hoodie on, open ur eyes
이번 글은 앨범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을 즐겁고 신나게 하는 앨범들을 너무 많고
각자 모두 큰 의미를 갖게 되는 앨범이기에,
몇 앨범들을 제외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모든 앨범을 언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너무 글이 길어질 것 같기 때문에 이만 줄인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죽하면 노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겠는가.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도 일을 통해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더 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진부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듣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가장 활발하게
가동되는 감각의 수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채로운 하위장르가 있는 힙합은
그러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심심할 틈 없는 힙합의 즐거움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찾아오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다.
다음에도 다른 주제의 앨범을 들도 찾아오겠다. -권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