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거짓말
<전편 참고>
*해당 에피소드에 나오는 내용 중 필자 본인이나 필자가 언급하는 타인에 대한 특정적인 내용
(지역, 성별, 나이, 이름 등)은 일부 각색하였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에피소드 내용 속 대화는 실화 기반으로 이야기 흐름에 맞게 각색했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그날 이후로 약 2년이 지났다.
아빠는 그녀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나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더 이상 지방 출장을 가지 못하게 되었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만 일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빠랑 단 둘이 있는 경우가 별로 없어 어색했는데
2년이 흐르니 어느덧 익숙해졌고, 그와 많이 친해졌다.
엄마와 둘이 있을 때와 다르게 어딘가에 맡겨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밥도 배달시켜 먹는 경우가 많아 맛있었으며,
말 안 듣는다고 효자손으로 맞지 않았다.
비록, 아빠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엄마 없는 생활도 많이 익숙해졌다.
그녀가 보고 싶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내 평소 일상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설명을 해야 했다.
"엄마는 잘 지내셔?" , "엄마는 어디 계셔?"라고 물어보는 그들에게 나는 아빠가 처음에 말해준 대로
엄마가 심장이 아파 수술을 두 번 해야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자 그들은 모두 그녀를 걱정했고, 병문안은 가봤냐,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병문안에 오지 말라고 했다며 아직 안 가봤다고 말하거나,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나도 병원에 가 있는 엄마 소식에 대해서 잘 모르고, 병문안에 가본 적도 없는데 무엇을 알겠는가.
그럴 때마다 나도 엄마의 소식이 궁금해서 아빠한테
몇 번 물어봤었다.
"아빠, 엄마 병원에 있다며 병문안에 안 가?"
"엄마가 오지 말라고 해서 못 간다고 말했잖아."
"그럼, 퇴원은 언제 하는데?"
"수술 2번 해야 하니까, 아직 한참 남았지?"
".........."
그때부터 나는 직감했다. 아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이렇게 천하태평하다니.
아빠도 내가 눈치챈 걸 알았는지, 말을 정정했다.
주변 사람들이나 담임선생님이 물어보면, '엄마가 잠시 출장 가서 자리를 비웠다'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정정한 얘기 그대로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하니 더 이상 그들은 나에게 엄마의 행방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돌아오는 질문이 바뀌었다.
"엄마 괜찮으시니? 금방 돌아오실 거야."에서
"엄마 안 보고 싶니?"로 바뀌었다.
그럴 때마다 그때의 나는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안 보고 싶어요."
그들이 왜냐고 물어보면, 그냥 생각도 안 나고, 엄마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심이었고, 그렇게 얘기해서라도 그들이 그녀에 대해서 묻는 걸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들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동정의 눈빛이 너무 보기 싫었기에.
내가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전편에서 언급했던 4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밤 나를 낯선 집에 맡기며 편안하게 밤을 보낼 수 없도록 만들었고, 말을 조금이라도 안 들으면 바로 효자손 손잡이로 응징했으며, 식사 메뉴는 매일 똑같았고, 병원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거짓말로 완전히 집을 나갔다.
사실 엄마, 아빠의 거짓말은 너무 뻔해서 병원에 입원한 게 아닌 걸 이미 직감하고 있었고,
진짜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간 게 아닌 병원에 입원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말한 대로 곧이곧대로 따른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너무 싫었기에.
두 번째는 아빠가 했던 말 때문이다.
아빠는 나에게 그녀에 대해 두 가지 얘기를 당부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묻는다면,
'출장 가서 자리를 비운 상태'라고 얘기하라는 것과
'엄마가 보고 싶으면 그녀에게 가라'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녀가 보고 싶다는 말만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의 반응이 무서워서도 있었지만,
진짜로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의 앞에서는 그녀 얘기는 별로 하지 않으려고 했다. 괜히 분위기만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러다 시간이 지나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 날, 엄마의 행방이 궁금해진 내가 그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얘기하자,
그녀가 집을 나간 이유와 병원 핑계,
출장 핑계를 하게 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예상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도 있었다.
이제 한 아이를 향한 어른들의 거짓말이
모두 밝혀지는 것이다.
먼저 처음에 아빠가 그녀가 심장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한 건
그녀가 아파서 병원에 간 것은 진실이었고,
병원에 입원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녀가 정말 아파서 입원한 게 아니니
그렇게 천하태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그녀가 집을 나가기 2년 전부터 서류상으로 협의 이혼 상태였다고 한다.
원래는 엄마가 나를 데리고 집을 나가려고 협의했으나, 2년 뒤 그 약속을 깨고 나를 버리고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완전한 이혼상태가 된 것이다.
그는 내가 주변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는 것이 싫어 일부러 거짓말을 하게 했다고 한다.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고,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먼저 이혼을 하자고 한 사람은 엄마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에게 이혼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혼한 사람들이었는데, 자유로워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도 자유로워지고 싶다며,
여기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빠는 그녀의 이야기에 초반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를 생각해서 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 엄마는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 모든 얘기를 내가 크고 나서 말해주려고
했다고 한다.
초5면 조금 이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제는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해준 것 같다.
모든 진실을 다 알고 난 뒤에는
나는 나 자신을 부정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난 이유가
내가 그녀 말을 잘 들어서 떠난 것인가, 내가 놀이치료를 받을 정도로 친구들을 때려서?
아니면, 나 자체가 싫었던 것일까 하고 말이다.
또한, 나는 나 자신을 넘어서 존재도 부정했었다.
나는 태어나면 안 되는데 태어난 거구나.
어차피 버리고 떠날 거면 나를 왜 낳았을까.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랑받고 자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란 말인가.
내 존재를 부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내가 평상시 생활을 하다가 힘들 때 극대화되어 내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렇게 만든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만나면 물을 뿌리고 실컷 때리고 싶을 정도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시간이 10년 이상이 흘렀고,
지금 그녀의 흔적은 사진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그녀가 우리의 일상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이다.
원래 처음부터 아빠와 나 둘인 것처럼.
그는 늘 말한다. 본인이 나의 엄마이자 아빠라고.
또한 주변에서도 이혼 가정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보니 이제는 엄마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순간,
바로 이혼했다고 말하고 다닌다.
아빠도 이제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다니라고 한다.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고, 그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니까.
지금도 나는 그녀가 참 원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계속 우리와 함께 살았다면,
어렸을 적 나의 밤은 여전히 불안했을 것이고,
맛있는 음식들도 먹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지 못했을 테니.
또한 가정을 나 몰라라 했던 그녀가 계속 같이 있었다면
우리 집 생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그녀에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집에서 나가줘서 고맙다고.
그녀가 아니었으면 나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날 이후로 계속 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나가있어 달라고.
이미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마음속에서 죽었다.
안녕, 엄마였던 사람이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앞으로도 영원히.
내 일상에서도 잊혔던 것처럼 내 생각 속, 마음속에서 영원히 잊히길.
TMI
1.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은 전부터 징조가 있었다.
내가 밤마다 다른 집에 한참 맡겨지고 다녔던 그 시절,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대놓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녔고, 나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심지어 찜질방 VIP룸을 예약해서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으니. 한두 번이 아니었다.
2. 할머니는 그녀가 집을 나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어린 나를 볼 때마다 "한참 엄마 손이 필요한 때인데, 버리고 가다니 나쁜 년, 쯧쯧."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3. 엄마의 부재가 알려지자, 주변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집주인아주머니는 나를 그녀의 집으로 데려가 짜장면을 사주고,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나와 함께 맡겨졌던 아이들의 엄마는
곧 돌아올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