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인지 내게 연애 상담을 바라는 지인들이 더러 있다. 그다지 연애 경험이 많지도 않거니와 가까이 지내는 친구조차 몇 명 없는 내게 연애 상담을 통해 바라는 게 무엇일지는 몰라도, 내 나름대로 성실히 이야기를 듣다 보면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건 바로 대부분 사람들이 대부분의 연인을 대상으로 대부분 이슈에 대해 대부분 제멋대로 상상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내가 글쎄, 여/남사친을 만나러 간다는데 그이가 쿨하게 그냥 보내주는 거 있지?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글쎄, 혼자 아파서 서러워하고 있는데 그이는 자기 일 하느라 바빠서 연락도 안 되는 거 있지?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글쎄, 무슨무슨 말을 했는데 그이는 공감도 안 해주는 거 있지? 너무한 거 아니야?"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 "그래, 그 사람이 너무했네" 하고 대답해 줄 법도 되었는데, 여전히 이렇게 대답하지 못한다. 대신 이렇게 대답한다. "상대방한테 그 주제로 대화를 해 봤니?" 이렇게 물으면 대개 "당연하지!" 하고 답하며, 자기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깊은 하소연을 했는지 나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듯, 하소연과 대화는 다르다.
나름대로 서로에게 욕정과 애정을 느껴서 하는 연애 아니던가. 그리하여 애인으로서 상대방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리하여 만약 당신이 연애를 시작한다면, 상대방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려 노력하기 시작할 것이다. 애인 얼굴에 침 뱉지 않기, 느닷없이 뺨을 때리거나 로우킥을 차지 않기 등등. 마찬가지로 당신도 상대방으로부터 침이나 뺨이나 로우킥을 맞지 않기를 기대할 것이며, 만약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분노와 짜증과 서운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애인이 난데없이 달려와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면 기꺼이 화를 내도 좋다.
그러나 연애가 인간과 인간의 공존의 문제를 포함한다면, 어디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일이 쉽던가. 연애에서의 공존도 간단하지만은 않다. 문제는 상대방과 당신이 서로 뭘 원하는지 모르는 데서 시작한다. 어떤 이는 자기 전에 느끼한 목소리로 '잘 자요, 내 사랑' 하고 속삭여주기를 원할 것이고, 어떤 이는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이 격정적인 키스를 해 주기를 원할지 모르는 일이다. 심지어는 애인에게 난데없이 달려와 로우킥을 한 대 차주길 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상대방과 당신이 서로 뭘 원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른 데 있다. 예컨대 당신은 시원한 곳에 누워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당신의 애인은 뜨거운 여름날 해변에 앉아있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과 당신이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르며 각자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모를 뿐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도 원할 것이라고 여기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시원한 방에서 누워 있고 싶은 당신에게 당신의 애인이 이렇게 조른다. "우리 뜨거운 해변가에 앉아 있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애인은 모두 철부지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서 저렇게 말하는 거라고? 그럴 리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을 조르는 애인에게 말해보라. "당신은 나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라고. 맹렬한 로우킥과 뺨을 동시에 맞을지 모른다. 문제의 핵심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에 선 채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연애 상담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문제의 핵심은, 대개 아주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되어 있다. "배려"라는 두 글자 단어로.
배려(配慮)란 무엇인가. 표준국어 대사전에 의하면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배려(配慮):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표준국어대사전 》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배려란 도움과 보살핌을 위해 마음을 쓰는 일일 뿐이다. 그 사용된 마음이 상대방한테 닿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실로, 대개 당신이 배려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그 마음이 전달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는 일도 배려의 미덕이므로. 기껏 배려를 해놓고 상대방에게 '나 배려했지롱~' 해봤자 그건 생색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당신의 애인이 더운 곳에 앉아 있기를 바란다고 철석같이 믿고서는, 당신의 애인에게 땡볕이 쬐는 해변 아래에서 앉아 있자고 조를지도 모른다. 실상 당신의 애인은 추운 곳에 누워 있고 싶거나 미지근한 곳에 서 있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당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은가? 당신은 애인을 위해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고 있으므로.
그렇다고 모든 배려가 나쁘다든지,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법한 짓만 골라서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애인에게 느닷없이 얼굴에 침을 맞기를 원한다면 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방법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얼굴에 침을 뱉어주길 원해." 상대방은 짐짓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손사래를 치며 거절할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원해도 그건 자기 생각에 너무 가혹한 행동이므로. 그래서 서로의 요구를 타협하여 진한 키스를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그들은 드디어 대화에 도달한다.
여/남사친을 만나러 가는데 쿨하게 보냈다고? 대인관계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그의 배려일지 모른다. 아파서 서러워하고 있는데 연락이 안 왔다고? 아픈 사람을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은 그의 배려일지 모른다. 무슨무슨 말을 했는데 공감을 안 해준다고? 당신이 바라는 '공감'과는 다른 형태로 공감하는 일이 그의 배려일지 모른다. 다만 당신은 그런 식으로 남을 배려하지 않을 뿐,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려받기를 원할 뿐. 그렇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건 연애 상담이 아니라, 대화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려(配慮)는 곧 배려(背戾)가 될지 모르는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