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준 Aug 22. 2023

유머란 무엇인가?

유머에는 파워가 있다.

 애인의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저는 재미있는 사람이 좋아요." 실로 모호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재미있다니? 당신이 빼어난 외모를 갖추고 있다면 "오렌지를 먹은지 얼마나 오랜 지" 같은 썰렁 개그를 해도 상대방은 재미있을 것이다.  한편 당신이 우스워 보인다면 상대로부터 웃음을 끌어낼 순 있겠지만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웃음은 필시 비웃음일테니.'재미있는 사람이 좋다'는 말은 잘생긴 사람이 좋다는 말도, 우스운 사람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좋다는 말이겠지.


실로, 유머에는 독립적인 파워가 있다. 연애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평범한 외모를 가졌지만 빼어난 입담으로 상대를 매혹시키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정치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젤렌스키는 과거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코미디언이었던 이력이 있다. 이처럼 유머는 그 나름의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음에, 어떻게 유머를 갈고 닦을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유머가 갖는 파워의 속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권력(파워)하면 생각나는 것과는 다른 속성을 띤다. 가령, 칼을 든 강도에게 보통 사람의 파워는 무력하다. 칼을 든 강도는 권총을 든 경찰에게 무력하고, 권총을 든 경찰은 더 높은 직급의 경찰에게 무력하다. 모든 권력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권력의 구조는 이처럼 선형적이거나 수직적이다. 그러나 유머의 파워는 다르다. 신입사원의 재치 있는 유머는 부장님의 썰렁 개그를 압도하는 파워를 갖고 있다. 적당히 잘 생긴 외모의, 유머감각 없는 사람보다는 평범한 외모에 유머감각 있는 사람이 더 연애하기 쉽다. 직장에서의 수직적 권력구조와 연애에서의 선형적 외모권력은 유머로써 전복된다. 와우!


고전적으로, 이러한 유머가 갖는 파워를 잘 드러내는 문화 현상은 이른바 풍자다. 아래는 신윤복의 <연소답청>의 모습이다. 사대부를 상징하는 갓, 품위 있는 걸음걸이, 단정한 옷차림은 온데간데 없고 기생들에게 잘 보이려는 부잣집 한량들의 모습을 담았다. 신윤복은 이율배반적인 선비들에게 다가서서 느닷없이 귓방망이를 올리는 대신, 조용히 선비들의 우스운 자태를 꼬집는다. 그럼에도 신윤복은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윤복의 유머가 당대 양반의 정치권력에 대한 도전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양반들이 도전적인 그림을 받아들고도 분개하여 신윤복을 처벌하지 않았던 이유가 뭘까? 내 추측은 이렇다. 재밌으니까.


신윤복의 <연소답청>.



 유머는 이렇듯 딱딱한 권력 구조를 한시적으로나마 전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 같은 특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자칫 '드립'을 잘못 쳤다가는 엿 되는 수가 있으니, 농담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구사할 필요가 있다. 조잡한 유머를 구사했다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소개팅에 나가 썰렁 개그를 남발해보라. 상대방이 불편한 표정으로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하고 자리를 비운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권력을 틀어쥔 자도 조잡한 유머의 대가는 피할 수 없다. 당신이 직장 상사라면 회식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이 죽은 이유는? 차가와서' 따위의 농담을 해보라. 부하들이 앞에서는 웃어줄 지 몰라도, 슬슬 당신과의 술자리를 피하려 들 것이다.


  실패한 농담의 대가가 고작(?) 인간관계의 균열만은 아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실패한 드립의 처절한 대가를 잘 보여준다. "농담"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 주인공이 '개드립'을 쳤다가 인생이 완전히 엿 되는 내용이다. 특히 이념과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사회에서, 가볍게 던진 농담이 실패했을 때 사람이 어디까지 엿 될 수 있는지를 작품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시의적절하게 남들을 웃기는 데 실패한 유머는,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끔찍한 '드립'을 치는 것보다는 입을 닫고 있는 것이 낫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시의적절치 못한 농담이 어디까지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지 잘 보여준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시의적절하게 '드립'을 잘 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임에도 주변 사람들을 '빵 터지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이제 중년의 나이임에도 탁월한 유머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중년들이 나이를 먹으며, 잘록했던 허리에서 뱃살이 나오고 탱탱했던 피부가 처지듯, 유머감각도 쇠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중년의 나이가 무색하듯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까운 이들을 웃게 만든다. 나 또한 그와 대화를 나누면 한마디 한마디 촌철살인의 유머에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곤 한다. 


 그래서일까, 나의 애인은 급기야 그 중년 남성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40대 남성을 질투하는 20대 여성이라니! 다소 놀라운 일이지만, 유머가 갖는 파워를 상기하면 이 놀라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 40대 남자와 20대 여성은 연애의 관점에서 동등한 파워를 행사할 수 없다지만, 유머는 그것을 넘어서는 파워가 있을테니.

 

  



작가의 이전글 변화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