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정치다. 그러므로 정치적으로 사랑하라.
사랑과 정치는 그 시작부터 퍽 닮아있다. 전정치(pre-political)상태에서 정치상태로 이행하는 사회계약의 장엄한 현장처럼, 간질간질하게 썸을 타는 단계에서 "우리 이제 연애합시다" 하고 선언하는 과정은 사랑이라는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다. 그러나 사랑의 사회계약에서 당신의 주권을 공고히 하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단지 목숨을 부지할 뿐인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런가 하면 사랑에도 법치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정의하듯, "우리 연애해요" "우리 결혼했어요" 하고 제각기 정체성을 정의하지 않는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처럼, 우리의 사랑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각기 규정하지 않는가. 헌법이 있고 입법이 있듯, 사랑에도 입법이 있다. 입법의 현장인 국회에서 온통 치고받고 싸우는 것처럼, 사랑에 있어 입법의 과정도 대개 투쟁이자 작은 전쟁이다. 입법이 있고 집행이 있듯, 사랑에도 집행이 있다. 사법 집행의 현장에서 판사에게 두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면 어느 정도 참작이 되는 것처럼, 사랑에 있어 집행당할 것 같다면 싹싹 빌기를 권한다.
그뿐이랴, 사랑에도 체제(regime)가 있다. 민주주의, 권위주의, 독재체제, 전체주의처럼 사랑에도 갑질 체제, 알콩달콩 체제, 을질 체제 등의 체제가 있다. 그러므로 갑질과 을질보다는 보다 '민주적'으로 사랑하기를 권한다. 역사상 무소불위의 독재체제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기억한다면, 지하 벙커에서 쓸쓸히 방아쇠를 당기거나 연회 자리에서 피격되지 않기를 권한다.
한편 정치에 국가, 정부, 국제관계, 비정부기구 등이 변수로 개입하듯 사랑도 단지 둘만의 것이 아니다. 친구들의 훈수, 부모의 푼수, 경제적 분수, 예기치 못한 실수 등이 사랑의 변수가 된다. 친구들 훈수의 국제관계에 사랑의 국내관계를 망치지 않기를 권한다. 경제적 분수에 걸맞지 않는 조세지출로 사랑의 국고를 탕진하지 않기를 권한다. 예기치 못한 실수로 과속딱지를 끊지 않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에도 고귀한 거짓말(noble lie)이 필요하듯 사랑에도 낭만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민중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연암 박지원은 <명론>이라는 에세이에서 가장 참담한 상태는 욕심이 없는 상태라며, 거짓말로서 이름(명예)을 강조한 바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나이트》(2008)의 마지막에 투 페이스의 악행을 거짓으로 떠안으며 배트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도시에는 선한 영웅이 필요해요."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낭만의 거짓말이 필요하다. 달리 공감되지 않는 하소연에도 "그거 참 안됐네" 하고 고개를 끄덕여줄 필요가 있다. 들뜬 상대방을 섣불리 진정시키기보단 같이 들떠줄 필요가 있다. 로맨틱하고 달콤한 말들이 입에서 잘 나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꺼내 뱉을 필요가 있다. "내가 예뻐? 전지현이 예뻐?" 하는 질문을 받거든 "네가 훨씬 예쁘지" 하고 대답해줄 필요가 있다.
그건 거짓말이라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거짓말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이 사랑에는 로맨틱한 말들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