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에 성장을 가정한다면

<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14

by 문현호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울에 빠졌습니다. 우울에서 헤어나온 뒤에는 삶의 목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의 뒷부분에서는 제가 삶의 목적, 행복을 이해하고 지키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흥미로운 방법을 알게 됩니다. 제 기술을 이용해서,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고, 매번 성장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었어요.

저는 처음에 영상 제작이라는 퀵 윈 과제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자면, 영상 제작은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에요. 저는 실제로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창조한 거죠. 그것도 아주 그럴듯하게 말입니다. 게다가 이미 제 후배 중에는 그 기술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어요.

영상 제작은 시급이 매우 적게 나옵니다. 당장 제가 5분짜리 예쁜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에 40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했는데, 그 영상이 40만원짜리는 아니거든요. 해봐야 5~10만원, 퀄리티가 매우 좋으면 20~30만원 사이로 나오겠죠. 여기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영상편집 기술자들일 겁니다. 그들은 기본 키트를 이용해서 빠르면 2시간, 퀄리티를 높이면 10시간 내로 그런 영상들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을 거에요. 그들을 초보가 이길 수는 없죠.

하지만 ‘성장’을 가정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영상을 두 번째로 만들 때는 시간이 절반 정도밖에 들지 않아요. 세 번째는 처음의 1/3, 네 번째는 1/4 정도만 들어가더군요. 소모되는 시간은 경력에 반비례하여 감소할 겁니다. 비슷한 영상 제작을 열댓 번만 반복한다면 저는 바로 그 ‘영상편집 기술자’ 반열에 들 수 있는 거에요. 같은 일을 반복해서 경력을 키운다면 시간 당 효율이 증가하고, 곧 시급이 증가할 겁니다.

생각해보면 영상 제작은 그럴듯한 기획과 굉장히 단순한 작업들의 반복입니다. 단순한 컷편집이나 자막이나 전환 효과 정도만 넣는 유튜브 영상도 그렇고, 제가 좋아하던 모션그래픽도 생각해보면 오브젝트들의 움직임과 효과를 잡는 단순 노가다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단순한 작업들은 효율화가 쉽습니다. 제가 편집 툴에 익숙해지며 몇몇 오브젝트 움직임을 아예 템플릿으로 저장해둔다면 어떨까요? 그럼 점차 비슷한 영상 제작에 드는 시간이 크게 감소하겠죠. 같은 형태의 글씨체, 자주 쓰는 이미지나 효과 등을 똑같이 템플릿으로 두고, 심지어는 ‘받아쓰기 노가다’인 자막 작성도 연결된 AI를 쓰면 됩니다.

저는 다른 많은 업무들이 이렇게 효율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몸이 아닌 컴퓨터를 쓰는 작업들은 말이에요. 엑셀을 다뤄야 한다면 함수와 매크로를 배우면 일이 훨씬 빨라지고, 메일이나 서류는 텍스트의 양식을 하나 만들어서 반복해서 붙이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아예 Python 코드나 인공지능을 이용한다면 웬만한 일들은 정말 단순화하기 쉬워질 거에요.

누군가는 단순 반복 업무에 대해, 아예 다른 사람을 고용하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나보다 시급이 저렴한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고, 그 결과를 받아서 다듬고 제출하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에요. 사장이라면 알바를 직접 고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고, 영어권에서는 아예 인도 등 제3세계에 온라인 비서 역할을 맡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AI 어시스턴트가 나왔네요.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효율이 전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생산성에 제한이 있으니 시급도 낮고, 직업으로 삼기에는 불안해보일 거에요. 하지만 스스로가 성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일이 유의미한 수입원이 됩니다. 처음에는 투자보다 비용이 더 많이 나오겠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 월 25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을 거에요.

게다가 성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수익의 규모는 월 250에서 멈추지 않아요. 처음에는 250이더라도 다시 생산성이 2배가 되면 월에 500, 또 2배가 되면 월에 1,000만원을 벌 수 있죠. 당장 이 정도만 해도 4~5인 가정의 일상을 유지하면서 자택을 구매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성장이 여기서 멈추지는 않을 거에요. 간략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하면 돈을 버는 일이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는 방법입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이라서 불안과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일단 그런 개인적인 작업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갑니다. 선례가 있으니 위험은 적을 거에요. 다만 그곳이 진짜 레드오션이라는 생각은 잘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가정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사무직의 구조가 더 그런 것 같아요. 일반적인 회사를 생각해보면 일이 있든 없든 출퇴근 시간 기준으로만 돈을 받고, 같은 일을 빨리 한다고 해서 개인적인 임금의 인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을 그냥 적게 하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라고 해요. 임금이 유의미하게 오르는 경우는 승진 혹은 이직 뿐인데, 이것도 흔치 않은 일이죠. 성과금이라는 제도도 있지만, 보통 팀 단위로 지급되는 만큼 개인의 노력은 구조적으로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리스크도 작지 않습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게다가 완전히 안정적인 상황을 만드는 건 어렵죠.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 굳이 고생하지 않으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안정적이고 건강한, 앞으로가 예측 가능한 삶은 분명 멋진 삶일 거에요.

하지만 저는 조금 더 역동적인 것을 원합니다. 저는 제가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 게 더 재밌어요. 제 생산성이 한동안 오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스트레스받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술을 갈고 닦으면서 스스로의 가치와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기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단순 전속 고용보다는 프리랜서에 가까운 형태로 말이에요.


처음에 제게는 영상 제작이라는 기술밖에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들어보았던 가치 있는 결과물이 영상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영상으로 수익을 버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편집 속도와 생산성을 더 올리기 위해서 저는 Adobe의 영상 편집 툴의 여러 기능을 익혔어요. 여러 템플릿을 다루는 법, Adobe 인공지능 서버를 이용해서 자막 다는 법, 더 나아가서는 아예 3D 움직임과 효과를 다루는 법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레드오션인 것처럼 보이는 영상편집 시장에서, 어떻게 수익을 얻어낼 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죠.

당시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영상을 자유롭게 여러 개 만들거나 아주 저렴한 값에 수주를 받아 경력을 쌓는 거에요. 그러면서 몇몇 작은 스트리머를 타겟으로 연락을 시도하는 겁니다. 작은 스트리머는 편집자를 구하기가 어려울 거에요. 특히 편집자는 그 스트리머의 밈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죠. 따라서 제가 스트리머의 팬으로서 영상 편집이 가능하다면, 쉽게 고용될 겁니다.
이후에는 반복 작업에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한 스트리머에 대해서는 자막 틀이나 편집 요소가 어느 정도 고정될 것이고, 점차 영상 편집이 쉬워질 거에요. 영상의 수나 고객을 늘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제 월 수익은 점점 늘어날 거에요. 제 편집 기술도 성장하겠죠. 초반에는 인기 없는 스트리머와 일을 하더라도 나중에는 100만 스트리머의 편집자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장기적으로는 3D 모델링 같은 기술을 준비할 계획이었습니다. 고품질의 3D CG 영상은 앞으로 메타버스와 함께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영상편집 기술을 이용한 수익화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학교를 포기하지 못한 만큼 영상편집의 수익화를 바로 시도할 기회가 없었어요. 게다가 저는 고등학교 2학년동안 조금 더 생산성과 가치가 높은 ‘기술’을 하나 더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코딩, 프로그램 개발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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