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13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울에 빠졌습니다. 우울에서 헤어나온 뒤에는 삶의 목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의 뒷부분에서는 제가 삶의 목적, 행복을 이해하고 지키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돈과 수입원
다음으로는 돈과 수입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돈을 보면, 많아서 나쁠 건 없다는 것이 중론이에요. 저축이나 수입, 그 돈 자체가 많아진다면 그것이 곧 자유이자 행복일 수도 있겠죠. 돈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고, 어느 정도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준 내에서는, 일단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을 거에요.
돈은 선택권을 담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는 진짜로 집에 돈이 엄청 많은, 강남 같은 곳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돈이 많은 친구들을 보면, 사실 그렇지 않은 친구들과 딱히 생활습관이나 겉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차이가 보이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였어요. 그들에게는 몇 개의 선택권이 더 있었습니다. 그들도 다른 친구들처럼 패스트푸드를 자주 선택했지만, 대신 원할 때 파인 다이닝이나 놀이공원, 택시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어요. 이건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돈은 시간과 체력과 교환이 된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려면 웹서핑에 시간이 들지만, 조금 더 돈을 쓰면 품질이 보장된 물건을 빠르게 살 수 있어요. 먼 거리를 대중교통이 아닌 택시로 가면 비싸지만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죠. 돈이 부족하면 시간과 체력을 써서 알바를 하는 것도, 반대로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면 돈을 써서 알바생을 구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비슷한 논리였습니다.
저는 돈을 반드시 벌어야 했습니다. 그럼 저는 수입원을 가져야 해요. 보통 그 수입원은 직장을 의미하죠. 제 시각도 아직 거기서 더 멀리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는 것은 무언가 아주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어요. 직장인들의 수많은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끔찍하게 느껴지는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가끔은 제 부모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수입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제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을 잔뜩 해야 한다면 저는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싫지는 않은 일에 돈을 많이 받는다 해도, 하루에 12시간씩 하면 자유로운 시간과 체력이 줄어드니 마찬가지로 자유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당장 직업에서만 생각해봐도, 돈과 시간과 흥미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그건 불행할 겁니다.
누군가는 자유로운 것이 곧 행복이라고 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안 할 수 있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고 싶은 일만으로는 돈을 충분히 벌 수 없다는 답변이 날아와요. 종이접기가 좋다고 그것만 하고 살면 큰돈을 벌지는 못할 겁니다.
그 전에, 저는 정확히 얼마를 벌어야 할까요?
저는 물가 개념이 없었습니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돈의 크기도 몰랐죠. 제 또래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그랬을 거에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구체적인 벌이와 재산 상황 등을 여쭤보고, 다른 친구들과도 여러 번 논의하면서 그 감을 잡아갔습니다. 가끔 외출할 때나 외식할 때도 상품들의 가격대를 알아보면서 물가에 대한 감을 열심히 잡아가고자 했어요. 학교의 친구들과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벌어야 하는 금액은 월 200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혼자서 월세를 내며 서울에 산다고 가정했을 때의 금액이고, 지금(2022년) 물가로 바꿔서 말하자면 250만 원 정도가 될 거에요. 월세에 관리비에 보증금 이자까지 약 80만원, 밥을 매일 사먹으면 약 100만원, 교통비 통신비 구독비 20만원, 가끔 사는 옷과 물건 30만원, 술약속과 기프티콘 등등에 10~20만원, 그리고 병원이나 회비 등 여유금까지 하면 딱 250만원이 나옵니다. 물론 절약은 가능해요. 요리를 직접 해서 먹는다거나, 학식/구내식당이나 고시원, 기숙사를 이용하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해봐야 1~20% 이상의 절약은 많이 어려울 겁니다.
이 금액은 연애와 결혼, 자택 구매, 그리고 노후를 포기했을 때의 금액입니다. 대한민국의 1인 가구 중위소득이 2024년 기준 220만원 정도라는 점과 비교하면 조금 충격적인 값이에요. 물론 지방이나 부모님 집에 거주하는 등 소득의 계산이 달라지는 경우는 있지만, 괜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가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집에서 완전히 독립하기 위해서는, 월 250만원 이상의 수익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에 약 60만원, 최저시급을 상정하면 매주 60시간 근무를 하면 나오는 수익이에요. 보통 주 40시간 근무가 정상이라면, 적어도 시급이 15000원 이상은 되는 일을 하고 있어야 독립이 된다는 거죠. 연봉으로 따지면 세후 3천입니다.
만약 제가 사무직을 그냥 들어간다면, 그래도 그 정도는 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에 대한 감각도 있고, 엑셀 같은 프로그램은 조금 만질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을 만나고, 사교적으로 어울리기도 하고, 좋은 직장이라면 자신감을 얻기도 하겠죠. 뭐든간에 지시하고 통제하는 상사만 만나지 않으면 일처리는 자신 있어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저는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연봉 3천으로는 결혼도 자녀 양육도 조금 어려울 지 모릅니다. 절약과 노하우를 알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저는 가능하다면 더 많은 돈을 버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그럼 연봉을 6천이나 1억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말인데, 그게 간단한 사무직에게 가능한 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아무리 해도 그 정도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리 봐도 저는 어떤 기업의 단순 사무직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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