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공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16

by 문현호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울에 빠졌습니다. 우울에서 헤어나온 뒤에는 삶의 목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의 뒷부분에서는 제가 삶의 목적, 행복을 이해하고 지키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연구자의 길?

여기서 흥미로운 건, 제가 제 전공인 생명과학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연구자의 길은 뭔가 좋은 수입원이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연구자의 길은 준비 기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만약 제가 생명과학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보통 박사를 따야 한다고 해요. 실제로 바이오 회사에 들어가서 연구 노동 인력이 되려면 석사 이상, 진짜 연구자가 되려면 박사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박사를 꼭 따라고 해요.

박사 과정까지는 최소 6년을 대학원에서 보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의 월급은 월 100~200 사이에 머물 거에요. 후반에는 성과급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4년 정도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야겠죠. 그리고 군대 문제까지 해결하고 나면 서른이 됩니다. 전문연구요원 지원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고, 제가 원치 않는 전공을 하게 될수도 있어요. 준비 기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저는 그 준비 기간이 딱히 재미있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직접 돈을 벌어 독립하는 느낌이 아닌 만큼, 충분한 성취감을 얻기도 어려울 것 같았어요. 다른 재밌는 일을 병행한다면 석박사 기간이 늘어날 겁니다. 그렇게 재미없는 기간을 6년 간 버텨야만 박사가 될 수 있고, 거기서 또 연구를 진행해야만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렇게 긴 시간을 버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냥 수익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 흥미로워서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고양이는 스스로가 성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울음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요. 그럼 고양이가 스스로를 성체로 생각하는 기준은 언제일까요? 바로 ‘사냥에 성공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때 고양이는 커다란 행복을 느끼죠. 고양이가 생쥐 장난감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저는 아직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 어린 고양이와 같아요. 분명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저는 사냥을 성공한 고양이처럼 큰 기쁨을 느끼고, 어른이 되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이때 대학원을 가겠다는 건, 그 성취감을 미루고 조금 더 ‘안정적인’ 경로를 가지겠다는 것과 같고요. 저는 단순한 연구보다는 그냥 그 성취감을 빨리, 더 많이 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생명과학 연구는 별로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특정 유전자의 기능 같은 걸 알아내고, 논리를 맞춰가며 생명을 이해하는 건 정말 재밌을 거에요. 하지만 그것이 제가 원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노화나 발암 유전자 하나 붙잡고 10년 정도 즐겁게 연구하면, 그 끝에는 연결된 다른 유전자에 대한 타겟 약물이 만들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확률은 낮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성취감을 얻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에요.

저는 가능하다면 조금 더 생산적이고 성취감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광합성 유전자들을 이용해서 고효율의 탄소 고정/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여 지구온난화를 낮추거나, 바이오에탄올을 쉽게 생산해내어 화석 연료의 사용을 크게 줄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생명과학을 연구하기보다, 그 연구 결과를 이용해서 세상에 변화를 주는 공학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그런 연구는 대학원에서 하는 것이 맞을까요? 그런 연구를 연구실에 소속된 제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기술을 대학원에서 연구하기만 하면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요? 뭔가 대학원은 제가 원하는 생산성과 성취감을 제공해주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경기과학고에 지원할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제가 박사를 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 생각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애초에 대학원에 가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 그걸 위해 희생하는 기회비용이 너무 큰 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죠. 제가 연구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할 정도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이 고민을 미루기로 했습니다. 일단 생명과학도 정말 재밌고, 생명과학을 배워둔다면 나중에 저에게 흥미로운 직관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은 조금 더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생명과학을 배우기로 했어요. 대학원은 학부 때 고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돈과 수입원은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고민해본 결과, 저는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몇 가지의 가정이 있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정이 있었고, 제 방향의 기술에 대한 수요가 탄탄하다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영상 컨텐츠에 관한 수요, 그리고 프로그래밍에 대한 수요는 분명 변함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바이오 산업도 마찬가지겠죠. 이렇게 저는 앞으로 노력을 통해 충분한 정도의 수입원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없겠지만, 적어도 저는 제 실력과 노력의 힘을 믿을 수 있었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제 힘으로 벌리고 해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바로 그 퀵 윈 과제들이 준 자신감 덕분이었습니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가장 큰 고민 하나가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아마 저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을 거에요. 이유는 제가 성장을 좋아하고, 괜찮은 계획과 시야와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마지막 행복의 조건, 사회적 소속감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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