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17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울에 빠졌습니다. 우울에서 헤어나온 뒤에는 삶의 목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의 뒷부분에서는 제가 삶의 목적, 행복을 이해하고 지키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사회적 소속감: 연애와 가정
마지막 조건은 사회적 소속감이었습니다.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우울해져요. 그런 우울과 불행을 피하기 위한 사회적 소속감의 요소로는, 좋은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연인이 있을 겁니다. 저는 일단 제 가족들과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어요. 대신에 친구 관계는 앞의 책에서 이야기한 여러 노력 덕분에 잘 만들어져 있었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가족들과의 정서적 문제는 천천히 해결될 것이고, 친구 관계 역시 긍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문제는 연인이었습니다. 조금 먼 이야기지만, 제 사회적 소속감은 마지막에는 제가 연인과 이룬 행복한 가정에 크게 의존할 거에요. 그리고 그런 행복한 가정은 좋은 연인을 만나야 이룰 수 있죠. 결국 사회적 소속감에 대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가 좋은 연인을 만날 수 있는지, 제가 서로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서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될 겁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좋은 연애를 하는 건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저 같은 애착 불안이 있는 사람은 최악이라고 이야가하기도 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 중에 심리적인 불안을 드러내서 연애 관계를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자신에게 속박하려 한다거나, 소통 없이 이해를 바란다거나, 너무 심한 것을 기대한다거나, 의견 차이가 조금 있어서 싸운 다음 그 감정의 골을 극복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물론 이런 연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다른 기술들처럼 연애도 경험이 많으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바로 유의미한 연애 경험 자체가 없다는 문제였습니다. 짝사랑 하나를 너무 길게 했기 때문이에요. 그럼 연애를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제게는 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애착 문제로 짝사랑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고, 이후에는 우울에 빠져있었으니 저를 좋아할 사람은 딱히 없었죠. 게다가 짝사랑을 하면서 인식하게 된 제 부족한 점들 때문에 저는 이미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애초에 체격도 엄청 말랐고 도수 높은 안경이나 쓰고 다니는, 남자다운 매력이라곤 찾을 수 없는 저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어떤 운명적인 만남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무슨 작품에서나 봤던 것처럼 비슷한 나이대의 곤란한 여자애를 도와주고, 그걸 계기로 서로 알아가는 그런 과정을 꿈꿨던 거죠. 그렇게 이상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라면 상대가 저를 좋아해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그 생각도 깨졌습니다. 연애와 만남은 그렇게 신성하거나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의 수많은 경험담을 통해 깨닫게 되었거든요. 결국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는 것보다도, 누군가가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저라면, 우울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이 못 하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저라면 다를지도 모릅니다. 연애가 누구나 하는 일이라면 저라고 못할 이유가 없어요. 저도 그들처럼 저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게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그런 상황을 위해서 저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일단 최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친절한 이미지도 좋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전문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을 거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자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계기로 스스로에 대한 나쁜 표현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뭔가 실수하면 스스로의 뺨을 때릴 정도로 스스로를 낮게 취급하고 있었어요. 자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었고, 스스로에 대해 멍청하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할 수 없다는 표현도 즐겨 쓰고 있었습니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는 제 스스로를 낮추며 상대방을 치켜올리곤 했고, 상대방이 저를 칭찬하면 그 칭찬을 부정하곤 했어요. 이런 표현은 제게 ‘자신감 없는 사람’이라는 최악의 이미지를 씌우고 있었고, 저는 그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나쁜 표현을 최대한 의식하면서 줄이고자 했어요.
의외로 표현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효과가 있었습니다. 일단 겉보기에도 자신감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이전의 우울한 분위기는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그 뒤로 점차 제 자신감 자체가 크게 늘어났어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 실제로 제가 습관적으로 드러내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제 자신감 자체도 깎아먹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서야 저는 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부정적인 표현을 완전히 끊어내기로 결심했어요. 자학 개그도 멈추고, 성과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성과를 내며 스스로의 자신감과 이미지를 키우다 보면, 저는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약간 확신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 깊고 비전이 확실하며, 그런 생각을 실제 성과로 보일 수 있다는 점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 점을 더 갈고닦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타날 겁니다. 제가 제 일을 열심히 하면서 겉으로 자신 있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믿으며 일단 혼자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만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믿기로 했어요.
이때 저에게 그나마 희망이 되어주었던 사실은, 제가 중학교 때 고백을 한 번 받아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는 이유로 그 고백을 거절했어요. 이미 제가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는 건 전교생이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유학을 다녀온, 제게 고백한 이 친구만 빼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정말 어쩌면, 제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면 저를 연애 상대로 생각해주는 사람은 조금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중학교 내내 그 소문과 놀아주면서 모든 기회를 걷어찼던 거에요. 반면 그런 소문이 닿지 않을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 받았던 고백이 한동안 제게는 작지 않은 희망이었습니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타날 겁니다. 제가 제 삶을 당당하게 마주하며 살아간다면 말이에요. 다른 친구들도 다 하는 걸 제가 못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정서적으로 성장할 거고, 이성적인 매력도 지금보다는 훨씬 늘어날 거에요. 그럼 저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된 좋은 연애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나중에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고, 사회적 소속감을 충분히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저는 행복의 조건 중 하나인 사회적 소속감, 특히 연애와 가정에 대한 고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늘 하던대로 잘 대해주고, 수익원을 만드는 노력을 이어가며 멋진 성과를 여럿 만들다 보면 연애나 가정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거에요. 물론 연애를 위해 따로 해야하는 노력도 있겠지만, 다들 하는 일인데 저도 조금만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정을 많이 붙인 잠정적인 결론이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자신 있게 연애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의 노력은 분명 성과가 있었습니다. 과정과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연애도 해봤고, 이후에는 소개팅 제의도 몇 번 받았거든요. 미팅 자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만 아직 연애를 ‘잘’ 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불안과 애착 문제, 외모 문제, 체격 문제, 자신감 문제, 심지어는 이성을 만나는 기회도 만들 줄 모른다는 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이 남아있었어요. 이렇게 남아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과 결과는 다음 책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19년 살아본 보고서: 영재고에서 찾은 서울대 너머> 출간 소식 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