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1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낮은 성적 문제와 애착 불안 문제를 동시에 마주했습니다. 자존감은 무너지고, 마음의 안식처는 무너졌으며,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에서는 제가 그 우울증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어떻게 자존감과 행동력을 되찾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 시작하기 직전에 부정적인 감정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을 모두 써서 그 감정에서 거의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앞의 장에서는 그 상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제가 어떻게 그 상태를 해결했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전에 앞에서 이야기한 제 상태를 한 번 돌아볼게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부정적인 상황을 인식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상황이 복잡할수록 부정적인 감정은 더 심해져, 부정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어요. 이럴 때는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최대한 잠재운 다음, 부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때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상황은 삶의 규모만큼 거대했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도 너무 거대했던 것 같아요. 이걸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부정적인 상황, 너무 부정적인 감정
저는 먼저 어릴 때부터 애착 불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이유로 가족들을 신뢰하거나 애착을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어요. 친구도 없던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깊은 짝사랑에 빠졌고, 그 상대에게 가장 심한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경험도 매력도 없던 저는 5년이나 기다렸지만 당연히 짝사랑을 이루는 데에 실패했고, 애착 문제를 더 키워버렸어요. 게다가 수많은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자존심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남은 자존감의 근원은 제 성적과 성과였습니다. 특히 수과학에서 저는 꽤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서 가족들과 선생님들, 친구들로부터도 인정받곤 했어요. 하지만 경기과학고에 입학하고 그나마 자신이 있던 수학과 과학 성적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부진아 취급을 받게 된 거에요. 결국 저는 그 누구의 인정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수많은 기회를 잃었고, 앞으로 성적을 높일 자신도 없었어요. 이런 경쟁 속에서 제가 앞으로 충분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애착의 대상을 잃었고, 동시에 스스로를 세워주던 자존감도 잃어버렸습니다. 제 정신은 무너졌고, 결국 흥미와 호기심으로 이루어져 있던 실행력도 부서지고 말았어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이 부정적인 상황은 인생의 규모만큼 거대했습니다.
이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우울입니다. 불안과 무력감의 합이죠. 앞으로도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저는 그걸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잃어버린 애착과 자존감을 다시 세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상상은 너무 괴로웠고, 저를 더 깊은 우울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을 찾아다녔지만, 점차 그런 고민 자체가 괴로워졌습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수만 가지 이유를 알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제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고의 경로에서도 다시 불안함이 떠오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생긴 우울은 제 사고력을 갉아먹었고, 결국 부정적인 감정만이 남았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상황을 가렸습니다. 말하자면 현실의 문제 몇 가지가 제 행복의 코어를 파괴했는데, 그 자리에서 우울이라는 독성 안개가 잔뜩 뿜어져나오고 있었어요. 핵심적인 문제가 다른 문제를 만들어서 저를 괴롭게 하니, 저는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저는 계속 우울과 불행 속에서 괴로워하게 되었어요.
결국 저는 인지 왜곡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노력하더라도 지금보다 성적이 나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은 확신이 되었고, 성적을 넘어 인생 자체가 괴로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래와 꿈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어차피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 기회가 빼앗기고 무시당하는 일이 앞으로도 넘쳐날 거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언가를 노력해서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무력감이 계속 느껴졌고요.
곧 저는 스스로 매우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불행이 곧 개성이자 정체성이라는 착각을 가지게 됩니다. 친구들도 제가 원래부터 우울한 사람인 줄 알기 시작했고, 점차 우울이나 자살을 이용한 자학 개그가 당연해져 갔죠. 오히려 앞으로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만 있다면, 굳이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픈 건 싫어서 시도한 적은 없지만, 머릿속에는 종종 자살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겨울방학 동안 현실 도피도 심하게 했습니다. 매일 밤까지 애니메이션이든 유튜브든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남의 이야기를 보고, SNS 정도를 조금씩 하다가 새벽 4시 정도에 잠들고 오후에 일어나며, 그나마 다니던 학원 준비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단조롭고 지루하며 무서운 현실보다는 차라리 꿈속이 낫다는 기분도 들더군요. 굳이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수면 시간은 점점 길어졌습니다.
저는 이때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밖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햇볕을 쐰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넓은 침대에서 자면 더 외롭고 우울하기도 하고, 넓은 공간을 쓰는 것이 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침대를 한동안 사용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방의 구석에서 좁게 잠드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았어요. 햇볕도 없이 운동도 안 하고, 밖에 나가기는 커녕 방구석에 스스로를 가둬놓았으니, 결국 우울은 더 심해져갔습니다. 마치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처럼, 더 우울하고 괴로우면서 안정된 상태가 되어갔어요.
여기까지가 고등학교 2학년을 시작하기 직전의 제 상태였습니다.
아마 이런 우울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보았을 겁니다. 애착 불안 문제나 기대에 비해 부족한 성과 문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하나만 나타나더라도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줄 거에요. 그때 충분한 회복 탄력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저렇게 극단적인 우울로 빠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런 우울을 무시하는 문화가 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건 물론이고 스스로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기 어려워요. 결국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서야 자신의 감정 문제를 깨닫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겁니다.
삶에 대한 비관과 우울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울이라는 독성 안개가 잔뜩 나오는 곳에서, 앞도 보이지 않게 하는 그 안개를 뚫고 핵심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절대 한 번에 할 수가 없죠. 안개를 먼저 걷어내는 것처럼, 악순환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비관까지 발전한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그 거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웠다고 해서 문제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 ‘살아가는 법’을 다시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문제는 여전히 남죠. 정말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일만 하며 낙제만을 피해다녀야 한다면 반드시 다시 우울해질 거에요. 성과가 좋다면 우울을 피할 수 있겠지만, 그 우울은 끝까지 쫓아올 겁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그 거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우고, 동시에 저만의 살아가는 법을 찾아가며 부정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이야기는 분명 부정적인 감정에 짓눌린 분들과 살아가는 법을 찾아 헤메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등학생의 이야기지만, 고등학생이 아닌 분들에게도 접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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