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살아본 보고서> 8.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 2
'영재고'라고도 불리는 경기과학고등학교에서 2학년이 된 저는 낮은 성적 문제와 애착 불안 문제를 동시에 마주했습니다. 자존감은 무너지고, 마음의 안식처는 무너졌으며,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8장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에서는 제가 그 우울증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어떻게 자존감과 행동력을 되찾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럼 제가 부정적인 감정을 깨고 찾아낸 ‘살아가는 법’, 그리고 그 방법을 찾아간 과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시작은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독성 안개 자체를 충분히 잠재우는 단계였어요. 그 과정은 세 가지 열쇠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세 가지 열쇠를 운 좋게 얻었어요. 먼저 그 세 가지 열쇠가 각각 무엇이었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열쇠 1. COVID-19
첫 번째 열쇠는 바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이었습니다. 모두 기억하시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의 사람들을 생명의 위협에 빠트리고, 이후에는 경제적인 문제와 후폭풍을 불고 온 사태였어요. 특히 모든 개인의 외부 활동을 국가가 통제했고, 생체 안전성이 완벽히 확보되지 않은 백신을 제공받는 것만이 최선이었던 인류 초유의 사태였죠. 많은 사람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고, 그 상황에서 심한 경제적 및 심리적 피해를 입은 사람도 정말 많았습니다. 인류에게 다시는 없어야 할 위기였어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에게는 그 상황이 기회로 다가왔어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이때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사상 초유의 사태로 무려 ‘개학’이 미뤄졌거든요. 저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2개월의 시간이 추가로 주어졌습니다. 게다가 온라인 수업 역시 부담이나 체력 소모가 훨씬 덜했어요. 덕분에 체력이 많이 남았죠.
저는 그동안 다른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성적으로 비교당하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저 혼자서 지내는 시간을 많이 만들 수 있었어요. 시간과 체력은 저에게 정신의 회복이라는 마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고 ‘몇 번 감염자의 동선’ 같은 게 알려지는 2월 초를 기억하실 거에요. 제 상태가 가장 나빠진 시기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때쯤 저는 대충 오전 4시에 잠들 정도로 시차가 틀어져 있었고,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자면서 집 안에만 박혀있었어요. 특히 마스크 없이 외출이 금지된 후에는 80일 가까이 밖을 전혀 나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애니메이션이나 유튜브 등으로 심한 현실 도피를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다행히도 코로나19에 의한 전국적 봉쇄, 특히 ‘개학이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 덕분에 저에게는 시간이 더 많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특히 당시 부모님께서 저를 보내려고 하셨던 학원을 거의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약속이 잡히거나 연구 등의 과제로 학교에 가는 일도 없었으며, 그래서 체력도 조금 더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극단적으로 내향형인 저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그때쯤, 저는 이미 ‘현실 도피’를 충분히 많이 한 상태였습니다. 정말 2월 한 달 정도를 일 없이 누워서 잠만 잤고, 보고 싶은 것만 찾아서 보고 있었어요.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좋지 않았겠죠. 그렇게 애니메이션이나 유튜브만 잔뜩 보다 보니, 슬슬 그런 생활도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 저는 그냥 조금 다른 일을, 조금 새로운 일들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것도 조금 더 ‘주도적인’ 일을 말이죠.
사람은 단기적인 불안이 많을수록 ‘현실 도피’를 한다고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나 웃긴 유튜브 같은 ‘수동적이고 비현실적인’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그럼 이때 제가 이런 컨텐츠에 질리기 시작했던 건, 어떻게 보면 단기적인 불안이 크게 해소되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확실한 것은 이때 저는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그 기간 동안 조금씩 회복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건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제 마음과 정신의 상처가 나아진 거에요. 먼저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받은 충격과 애착 불안은 점차 스스로의 상황을 보며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와 비슷한 친구들도 많았고, 원래 처음에는 그런 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적에 관한 생각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그렇게 변하고 있는 제 생각을 보호해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코로나19에 의한 등교 연장이나 온라인 전환 없이 바로 다시 등교를 했다면, 저는 친구들을 만나 스스로를 비교하며 다시 상처를 받았을 거에요.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던 제 생각은 금세 무너졌겠죠. 코로나19는 저에게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행히도 그 시간을 잘 투자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많아지니, 결국 무언가 생각할 시간도 많아지더군요. 당시 저는 좋아하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가만히 있는 것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음악 자체를 즐기기도 했지만, 음악을 배경으로 저만의 상상이나 생각에 빠져있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짝사랑하던 상대와 함께 있는 어떤 상황을 상상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상상을 해봤습니다.
앞에서는 저도 이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들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죽는 건 조금 무서우니, 저는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그럼 저는 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바로 그 무력감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이 제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고 그 안이 제가 만족할 수 없는 흙먼지 뿐이라면, 저는 왜 이 세상에 살아야 할까요? 바로 그런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상상을 했어요. 그럼 제가 가장 원하는 상황은 뭘까요? 제가 지금 어떤 상황이 되면 가장 행복할까요? 학교를 간다면, 수행평가와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금보다 더 불안을 느낄 것 같습니다. 일반고로 전학을 간다 해도, 제가 경기과학고와 친구들에게 패배했다는 생각은 끝까지 남을 것 같아요. 학원에서 갑자기 성적을 올리는 건 불가능하고, 그게 가능하더라도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냥 학교 생활을 하기에는 좀 지친 것 같았어요. 차라리 지금 전쟁이 나면 어떨까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학교를 가서 불안에 떠는 것보단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때 저는 ‘무인도’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날씨나 먹을 것도 적당한 무인도에서, 사회의 의무나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혼자 살게 된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것 같았어요. 신기하게도 지금 다른 일을 하려면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 당장 그런 곳에 가게 되면 저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집을 짓고 밭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저는 ‘죽음’을 원하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정확히는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 저를 이렇게 ‘부진아’ 취급하는 상황과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거죠. 이미 제가 어떻게든 노력하더라도 멍청이 취급을 받게 되고 기회를 빼앗길 것만 같은 이 세상을 두려워했던 겁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누구보다 성실할 수 있는데, 이 세상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인 것 같으니, 두려움이 앞선 거에요.
이렇게 코로나19가 준 강제 휴식 시간 덕분에, 저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체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두렵더라도 제 상황과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렇게 고민을 계속하니 제 위치가 조금씩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울이라는 안개가 조금씩 가라앉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죠. 그러면 전략이 보입니다. 남은 건 안개를 완전히 치우고, 문제를 뽑아내는 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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