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이 난다. 새벽부터 설쳐댄 피로감이 일찍 찾아왔다.
오늘은 작은아이 현장체험학습 날, 아이는 도시락으로 김밥을 주문했다. 엄마가 만든 김밥이 맛있다는 이유다. 순전히 주관적인 평가다. 내 김밥은 쌀 때마다 속 재료도 간도 다르다. 당연히 맛도 그때그때 다르다.
엄마가 싼 김밥이 맛있다고 특별한 날 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정석대로 재료를 준비한다. 참치김밥, 일미 김밥, 땡초김밥, 우엉 김밥, 새우김밥, 돈가스 김밥... 김밥 종류가 얼마나 많은데 정석이 있을 리가 없다. 내 입맛에 맞추어 싼다는 전형성이 있을 뿐이다.
선율이 바뀌어도 전체가 통일성을 갖추는 교향곡 악장처럼 김밥의 변주에도 일종의 룰이 있다. 오선지와 음표 없이 곡을 쓸 수 없듯 김과 밥은 기본이다. 햄, 맛살, 계란, 단무지 베이스는 한 악장을 대표하는 주제와 같다. 계절마다 재료의 맛과 가격에 따라 속 재료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재료가 달라도 색깔별로 구색을 맞추는 것은 화음을 넣어 음악을 풍성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겨울엔 맛도 좋고 저렴한 시금치가 들어가야 제맛이고, 여름엔 시금치 대신 오이로 초록색 포인트를 준다. 당근채를 볶아 넣으면 화려함은 정점에 달한다. 어쩌다 밑반찬으로 만들어둔 일미무침이 있으면 한 줄 정도는 별미로 매콤한 일미 김밥을 말기도 한다. 이때의 일미무침은 일종의 꾸밈음표 역할을 한다. 변주곡이 변화와 통일로 예술성을 획득하듯 김밥은 속 재료의 다양성으로 하나의 예술이 된다.
작곡가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김밥도 싸는 이의 취향에 따라 특유의 맛이 난다. 유부를 졸여서 넣든 어묵을 볶아서 넣든 개인의 취향이다. 귀차니즘에 빠지면 소시지를 통째로 넣거나 김만 둘러 충무김밥을 만들어도 한 끼 식사로 대접받는 데 손색이 없다. 이 얼마나 다채로운 작품 세계인가!
그러나 원작이 훌륭해야 변주의 독창성도 돋보이는 법. 내 김밥은 어릴 적 소풍이나 운동회날 엄마가 싸주던 원작을 벗어나지 못한다. 엄마의 김밥 맛을 닮은 내 김밥은 당근을 넣어 변주를 시도한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듯 집김밥의 맛은 엄마의 손맛이다. 아이가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을 원하는 것은 엄마의 정성을 먹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소풍날 친구들과 서로의 김밥을 하나씩 나눠 먹으며 누구네 집 김밥이 제일 맛있는지 품평하던 내 어린 시절처럼, 아이도 친구와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엄마가 새벽부터 정성 들여 만든 김밥에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김밥 교향곡이 주는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