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기, 지혜롭게 나이들기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법 ; 메리 파이어 지음, 서유라 옮김, 티라미수, 2019.>
메리 파이어,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 나이'는 70대이다. 노년에 이른 여성 심리학자가 스스로도 인생의 굽이를 겪고, 직업적으로도 다른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돌보면서 얻은 통찰을 쓴 심리 에세이다.
흰 머리카락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일고, 로션을 바르려고 거울을 볼 때마다 눈 밑에 늘어가는 잔주름에 한숨이 절로 난다. 마음보다 몸으로 노화를 먼저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이듦의 서글픔 대신 노련한 원숙미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노화도 필연적인 삶의 과정이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년기까지 발달의 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말 그대로 전 생애가 '발달의 과정'인 셈이다. 청년기까지의 성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직업적 성취, 결혼과 양육을 두루 경험하는 성인기의 과업도 성장과 발달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몸과 마음이 쇠퇴해 가면서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노년기는? 협소한 의미로 생각하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나이에 무슨 발달이냐 싶기도 하다. 그러나 고령사회를 향하는 이 시대의 노인들이 모두 약자이고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의 삶의 이력에 따라 양극화가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연령층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나이듦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가까운 혈육의 죽음을 겪고 나면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따른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철학적 고민이 슬픔과 함께 얼룩진 나날들이 이어진다. 늙고 병든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음을 한탄하기도 하고, 멀지만 곧 닥칠 것만 같은 내 노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한데 엉킨다. 자기 계발서보다 죽음이나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 끌리는 이유다.
메리 파이어의 책은 현명하고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노인, 특히 사회적으로 돌봄과 희생의 무게에 짓눌린 여성 노인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이 배우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중산 계층의 노인만 우아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부족하거나 큰 병에 걸린 본인 혹은 가족을 돌보거나 무책임한 삶을 사는 자식들로 속을 썩이는 숱한 노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나름의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이는 없지만 그 끝에서 모든 이가 성장을 이뤄내는 건 아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삶의 각 단계에서 직면하는 도전과제의 해결책은 절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력 없이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는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 친밀한 인간관계, 긍정적인 삶의 이야기를 두루 갖춰야 한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기쁨과 감사, 삶의 의미를 배워나가며, 이러한 교훈을 통해 감정적인 회복력을 기를 수 있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메리 파이어, p.13 중에서)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우리에게 어른의 역할과 태도를 요구하지만, 지금의 나이에 합당한 지혜와 연륜을 갖추었냐는 질문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처럼 얼렁뚱땅 어른이 된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할 때도 많다. 지나고 나면 아쉬운 것 투성이다. 딱 그만큼 성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통을 겪고 난 뒤 누구는 좌절감에 쓰러지고, 또 다른 누구는 고통을 충분히 수용하고 더 나은 삶을 갈구한다. 어른이 되는 것도, 삶의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것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나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나보다 먼저 긴 생을 살아온 이의 담백한 이야기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귀한 조언이 된다. 늙고 병들어 갈 것이 두려운 중년 여성이라면, 자신이나 가족의 질병, 혹은 상실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노년이라면, 이도 저도 아니지만 주변에 있는 나이 들어가는 여성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메리 파이어의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