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eilish - hit me hard and soft 리뷰
billie eilish - hit me hard and soft 리뷰
영화 '바비'의 'what was I made for?'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해 주가가 한창 높아진, Billie의 HMHAS가 오늘 발매됐다. 이 앨범은 빌리 아일리쉬의 이전 앨범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AOTY의 오프닝 스코어가 지금까지 매우 높게 측정된 이유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앨범 표지와 선공개 사운드가 너무 맘에 들어서 공개 전부터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24년도 지금 시점까지 나온 여러 앨범들 중에 말하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다(근데 이건 내 지극히 개인적인 리스닝 취향). Laufey, the last dinner party...
쨌든 너무 내 취향인 앨범이라 가볍고 깊게 리뷰를 적어보고자 한다.
이전과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익숙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과거작들의 호러팝이나 자전적인 모습을 조금씩 차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 앨범은 특히 초반부터 'skinny',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내 나이에 맞는 삶인지, 새장에 갇힌 새, 스키니 진을 입은 대상화에 대한 분노를 가성으로 강하게 표현하며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략 5초 정도의 드럼이 뒤에 나올 트랙에 equation 되며 두 번째 트랙인 'lunch'가 나온다. 가장 빌리 같은 음악,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하며 앨범에 흡입력을 가지게 도와준다.
그리고 치히로, 그 센과 치히로의 그 'CHIHIRO'는 R&B 팝 느낌이 짙게 든다. 테크노의 영향을 가득 담아 중반부부터 fx 사운드가 들어오고, 보이스 자체의 볼륨을 줄여서 크레셴도 되는 사운드는 물에 빠지는 듯한 빌리 특유의 몰입감을 느끼게 도와준다. 그렇기에 1번 트랙부터 3번 트랙 -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올 5번까지의 연결을 정말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여담으로 빌리가 이 앨범에서 연결성에 초점을 엄청 뒀다고 말했는데, 그걸 알 수 있었다.
가장 팝적이고, 듣기에도 편하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트랙인 'birds of a feather'는 첫 트랙 'skinny'의 "무대에서 내려올 때면 난 새장에 갇힌 새 같아"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대답 같았다. "깃털 달린 새들이어 함께 모이자"라고 말하며 독백적인 가사들로 이어진다. 사실은 죽음이라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라는 집착적인 가사들이지만, 그마저 긍정적인 느낌이 가득한 팝이다.
그래서 그 이후에 나오는 'wildflower'는 전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하며 풍부한 감정을 표현한다. 약간의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거 같으며, 자신을 제외한 두 명에게 이별을 얘기하며 자신은 괜찮다고 위로를 하는 모습은 성숙한 작곡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앨범의 초반부부터 끌고 왔던 그 감정선이 이 트랙 'the greatest'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제목과 비슷하게 자기 위로적인 가사들은, 앞에서 느끼는 여러 자극들로부터의 해방, 슬픔, 격노 등을 듣는 사람과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앨범에서의 큰 변화, Love of my life라는 뜻의 'L'Amour de Ma Vie' 트랙은 초반 자체는 어쩌면 뻔한 노래일 수 있었다. 하지만 3분 30초쯤부터 하이퍼 팝을 연상케하는 음악으로 변신하는데, 이건 빌리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렇기에 이 노래는 두 가지 파트로 분류되는데, 앞 부분은 떠나간 이에 대한 회상을, 뒷부분은 떠나간 이에 대한 기쁨을 보여준다.
그리고 'the diner'는 도입부의 "dont be afraid of me"를 고딕스러우면서 재즈풍으로 연주한다. 앨범의 초반부부터 나왔던 팝적이고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음악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가 이전 트랙에서부터 이어진다. 그러다가 플레이보이 카티의 rage를 연상케 하는, 반할리즘을 연상케하는 전자 펄스 된 사운드가 들리며 아홉 번째 트랙인 'bittersuite'가 시작된다. 이것은 전 연인에 대한 애절과 갈망이 도입-전개-결론의 세 단계의 형태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애절하다가 갈망하며 마지막엔 1분여 가량의 불안한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트랙인 'BLUE'는 앞에서의 불안함을 차분하게 눌러주는 음색으로 등장한다. 그에 더 우울해지고 해피엔딩이 아닐지도 모르는 앨범이 되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새에 대한 이야기다. 난 새장에 갇힌 새라는 지점이-하지만 그래도 함께 하자는 지점으로부터-다시 나는 애초에 깃털이 있는 새가 아니었다는 지점까지. 어쩌면 절망적인 모습으로 앨범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앨범은 빌리에게 있어서는 조금 다른 음악적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과거 앨범들을 엄청 좋아하지 않았지만(특히 바로 이전) 이번 앨범은 정말 좋았다. 트랙을 10개 정도로 많지 않지만 굉장히 집약적인 사운드와 주제의식이었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잘 살린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트랙의 아웃트로에서 던져줬던 "언제 다음 것을 들을 수 있냐"라는 질문은 너무 행복했다. 이 앨범이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렇기에 또 빌리의 앨범을 빠른 시일 내에 들을 수 있을 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