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영화를 보고,

삶의 주인으로서 나는 내 행복에 책임질 것이다.

by 주현


한국이 싫어서 영화를 보고,

찐 하이퍼리얼리즘 영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라는 나라를 1년간 살면서 지내왔던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들이 오버랩되어 공감하고 눈물지으며 보았다.




- 단순히 일차원적으로 한국의 사회를 비난하거나 그 풍조로 이민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행복한 삶을 누릴 개인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 여러 관점으로 조명하며 바라볼 수 있어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




먼저 이민의 삶. 타국에서 살아가는 선택.

태어나는 곳은 내가 정할 순 없지만,

살아갈 곳은 나 스스로 정한다는 것에서 이민에 있어서의 관점을 달리 바라보게 해 준 영화다.

추운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추운 게 너무 싫은 펭귄의 동화를 통해서 거주지 선택에 대한 자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태어난 환경과 나의 성향이 다르다면 자율적 선택을 통해 환경을 후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이민이구나라는 관점의 변화.

처음 워홀을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세컨드비자를 딸 것인지, 그리고 영주권 준비를 할 것인지를 당연스레 물었다. 나는 세상의 경험이 하고 싶었을 뿐 이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바라진 않았다. 저명하게 나의 뜻을 밝혔지만 살다 보면 달라질 것이라는 답변. 답변과 달리 나는 내 생각이 변함없을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했다.

1년이 지난 후, 그 누구보다 호주의 삶을 잘 즐긴 네가 왜?, 여전히 처음 마음에 변함이 없냐는 질문에 역시나 나는 변함이 없다고 확언했다. 왜 그렇게 확답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채 해결하지 않은 전공 공부가 있었고, 그 분야를 좋아했고, 이민을 해서 내가 호주라는 나라에서 이 분야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언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해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아득히 먼 길이라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뛰어다니는 청소년기에서 다시 걸음마를 떼는 유아기로 돌아가야 하는 느낌? 호주에서 느낀 내가 좋아하는 모먼트와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을 잘 버무린다면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한국에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국에서 사는 삶은 나는 영원히 애쓰더라도 이방인의 삶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삶이 호주에서 가져다주는 여러 이점과 비교해 봤을 때는 그렇게 큰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국에서의 삶은 내가 살아온 삶이 정답이 아니라는 틀을 깨 주었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통해서 개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스스로 정하고 살아갈 수 있구나, 사회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야 라고 만들어놓은 기준(인 것처럼 말하지만 정답은 아닌)만이 정답이 아니구나를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제목에도 나와있듯이. 한국이 싫어서.라는 사회 전반에 깔린 자국 혐오.

'한국이 싫다. 헬조선, 한국은 망했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이민을 가야 한다'와 같은 말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 나는 이러한 말들이 싫다. 한국이 싫은 것과 한국에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문화와 동향은 구분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정확히 한국에서의 여러 가지 차별적인 부분, 양극화, 능력주의, 간판과 숫자로만 규정되는 잣대들이 싫은 것이지 한국이라는 전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는 것.

개인은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한다.

한국은 싫지 않아서, 하지만 한국이 가진 능력주의 사회 기조는 싫은 나는 계나와 지명의 입장차가 너무 공감이 되었다. 계나의 가치관과 부합하는 비주류적인 사고와 타고나길 삐뚤어진 반항적인 마음씨,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이상적인 마음. 그것이 나와 닮아 계나와 나의 모습이 많이 오버랩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추운 게 너무 싫은 펭귄. 그것이 마치 나 같았다.

한국은 역사 이래 인적자본을 통해 선진국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인적자본이라는 단어처럼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는 도외시되었다.

최근 개인적으로 만난 타인에게도 '한국은 이래서 안 된다. 변화할 수 없다'는 단정적이고 확신적인 말에 또 삐뚤해진 반항적 자아가 떠올랐다.

자살률 1위, 우울과 불안과 같은 정신증상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점차 살기 힘든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가치 없는 나라인가?라고 생각했을 땐 전혀 아니다. 역사 이래 이렇게 급진적인 성장을 한 나라는 없다. 단순히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한국을 규정하기엔 일제식민지배 많은 독립투사들의 순국과 희생이 너무 가슴 아프지 않나. 우리나라가 별 볼 일 없는 나라였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까지 이 나라를 지키려 했을까. 를 깊게 생각해 보면 단순히 헬조선과 희망이 없으니 이 나라를 떠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일차원적 행동방식을 가질 순 없을 것이다.

웅장한 애국심을가지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 자주권을 가진 국민으로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는 고민해보아야 할 과제이다.개인적으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중받을 수 있는 삶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이라는 질문과 연결하여,

세 번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에 대하여.

계나와 경윤이 햄버거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 인상에 남았다.


- 행복이라는 말 있잖아. 왠지 너무 과대평가된 단어 같아. 나는 배고프고 춥지만 않으면 정말로 좋다. 나한테는 그게 진짜로 행복이야.


- 나는.. 난 공기 좋은 거. 공기 깨끗하고 방에 햇볕 좀 잘 들어왔으면 좋겠다. 난 그거면 돼.


행복의 무게와 금액이 크지 않은 그들에게 왜 이토록 한국의 삶은 버겁고 세상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까.

이번해 읽은 오찬호 사회학자의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좋다'라고 말하려면,

첫째, '누구나' 대단한 꿈을 꿀 수 있고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회인가?

둘째, 대단한 꿈을 꾸지 않는 '누구라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호주에서의 삶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느낀 건 아주 큰 것에서 오지 않았다. 퇴근 후 공원에서 별생각 없이 누워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과 저녁식사를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는 삶이어서 였다.

뭐 해 먹고 살지가 아닌 오늘 저녁 뭐 해 먹지?라는 질문에서 작은 듯하지만 큰 삶의 질 차이가 있었다.


삶이란 건 동전의 양면성과 같다.

어느 곳에서 살든 처음 느낀 이색적인 감동은 점차 둔감화되고, 일을 하며 오는 스트레스와 힘듦은 동일하다. 하지만 직업의 귀천이 없는 것, 누군가를 연봉과 나이와 같은 단순한 숫자의 잣대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바라봐주는 사회풍조. 그것이 좋았다.

영화 속 계나의 뉴질랜드 생활 또한 아주 황홀한 청사진이 펼쳐지지 않았고, 그곳에서 또한 이상한 사람은 존재했고, 차별을 하는 사람과 좋은 사람은 함께 존재했다. 일을 하는 것은 동일하게 힘들었고, 한국과의 삶과 비교해 보았을 때 표면적으로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을 지키려면 절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말, 마오리식 대처법이냐는 질문에 세계 표준이라고 대답하는 계나와 앨리의 대화에서 어쩌면 개인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삶이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닌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 권리. 절대적이고도 보편적인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구나.

계나는 그것을 위해 계속해서 자주적으로 행동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하에 삶을 살아갔다.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좋은 남자친구였던 지명과의 이별, 뉴질랜드에서의 추방 앞에서도 인도네시아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통해 자신의 삶에 자주적 선택권을 가진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단단하고 멋졌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을 또 다른 떠남을 통해 머묾이 아니라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도약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 삶의 주인으로서 내 행복을 책임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아 엔딩도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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