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을 외치는 세상 속에서 엄마는 대충 살아라고 말한다.
하루하루 애쓰던 나날들.
학교에서는 맡은 업무가 많고 하나도 놓치기 싫은 욕심에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은 요 근래의 일상들.
몸은 하나인데 여러 역할을 도맡아 하며 또 뾰족한 화살촉은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뾰족뾰족 인간이 되었다.
대학원 시절 상담을 했던 당시 상담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상기되던 요즘.
'주현 씨, 충분히 객관적으로도 많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면 누구나 힘든 게 당연한 거예요.'
힘듦도 버거움도 '누구나 다 이렇게 사는데 왜 이렇게 나약할까, 에너지 레벨은 왜 이렇게 낮을까' 결국 또 나 자신을 책망해 버리던 시절.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 없는 모습에 지친 하루를 보낸 날 밤 소리 내어서 엉엉 울며 잠이 들었다.
바다에 퐁당 뛰어들면 차가운 물이 몸을 적시며 물을 통해 내 몸에 붙은 무거운 짐들이 같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바다, 바다만 외치던 요 근래, 날이 점점 더워지고 나선 10분이라도 좋으니 바다로 뛰어들었다.
광활히 펼쳐진 수평선 앞에 작게 놓인 나 자신을 바라보면 세상의 일들이 얼마나 요원하게만 느껴지던지.
그래도 무겁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
주말 저녁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쓰며 살지 말고 편안하게 살라는 엄마의 말.
자주 통화하지 않지만 통화를 할 때마다 건네는 엄마의 말은 열심히 살지 말고 대충 살아라,
애쓰며 살지 말고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아라.
그냥 힘들게 살지 말고 바쁘게 살지 말고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멀리서 보지 않아도 너무 애쓰고 사는 게 보인다고.
학교에서는 초임교사로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고,
퇴근 후에는 침대에서 꼼짝을 못 하며 하루에 8시간 넘게를 자며,
인스타그램에선 제주의 여유로운 모습만 비추어지지만
정작 엄마라는 사람은 내가 얼마나 힘을 주고 사는지, 얼마나 애쓰며 사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알아서,
그 말 한마디가 너무 위로가 돼서,
열심히 살아라, 갓생을 살아라, 자기계발과 퍼스널 브랜딩에 혈안이 된 사회적 분위기기 속에서
애쓰고 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살고 싶지 않아서,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그냥 나답게도 아닌 사는 대로 살고 싶어서
정착한 제주에서도 나는 결국 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엄마와의 긴 통화를 하며 해는 뉘엿 져가고 떨어지는 해무리 사이, 철벅거리는 파도사이로 돌고래 무리가 지나간다.
엄마의 전화로,
기가 막힌 해넘이 덕분에,
귀여운 돌고래 무리 때문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전혀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고, 여전히 몸은 무겁고, 지금도 나는 애를 쓰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그래도...
빼곡히 꽉 찬 뇌 안에 한 평 남짓의 공간은 생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