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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Dec 20. 2022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쉽게 말하지

출판사 핌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쉽게 말하지>는 네 명의 남성 작가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쓴 수필집이다. 이 수필집은 출판사 <핌>이 “온전한 자기 이야기 하기”를 주제로 발간하는 두 번째 수필집이다. 첫 번째 <어쩌면 너의 이야기>는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들의 이야기였다면,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쉽게 말하지>는 남편이자 아빠인 남성들의 이야기다.

간혹 아내는 내가 친구와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묻곤 한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고. 하지만 나는 늘 친구와 딱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남자들은 자기 이야기 하는 게 서툴다. 물론 남자 중에도 달변은 있다. 말할 때는 성대모사에 동작까지 섞어가며 상세하게 설명할 줄 알아도 속상한 일을 물으면 달변의 대답도 대게의 남자애들과 비슷했다. 몰라 / 알아서 뭐 하게 / 그런 게 있어 / 넌 몰라도 돼 / 아니야.

그렇다. 이 책은 어른이 되어도 마음속에 어린 남자애가 사는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수필집인데도 마치 소설을 보는 기분이 든다. <맥주 하나 가 온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이 무서웠어도 맥주 가져오라는 어른의 말에 병을 쾅- 내려놓는 남자애의 호기로운 마음이 보였다. <불 주사>에서는 천방지축 남자애가 나 그때 하마터면 큰불 낼 뻔했잖아! 이게 내 불 주사야! 하며 으스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엄마, 저도 아들은 처음입니다>도 그렇다. 남자애들은 정신없이 놀다가 어느 순간 낯선 곳에서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제야 엄마! 하고 성을 내며 찾지 않던가. <따뜻한 말 한마디>는 또 어떤가? 이 남자애는 엄격하기만 한 규칙들을 피해 상상과 꿈속으로 마음을 꽁꽁 숨겨 버린다.

자신을 돌아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자고 글쓰기를 시작하고도 다들 자신도 모르게 요리조리 계속 마음을 숨기는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게 남자들 가슴속에 있는 남자애의 마음이지 않을까? 내 가슴속의 남자애도 이 네 명의 수필가들이 데리고 사는 남자애들과 비슷하다. 늘 달아나고 숨는다. 억지로 멱살을 잡고 끌고 나오면 한사코 아닌 체한다. 왜냐하면 만일 누군가 그 남자애를 강제로 무릎 꿇게 한다면, 나라는 존재가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은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네 명의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남자들은 모두 공감할 거다. 마음속의 남자애를 내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래서 이 네 분의 작가들이 고맙다. 나도 이 남자애를 언젠가 밖에 내보일 수 있는 희망을 줘서.

대학 시절 나는 강변의 모래밭 위에 텐트를 치고 친구들과 며칠이나 난장을 깐 적이 있었다. 술로 지새우던 어느 날. 우리는 새벽 일찍 깨어 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웠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은 옆에 앉은 녀석의 얼굴이 간신히 보일 만큼 우리를 두터운 솜처럼 덮어 안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때 한 친구가 지나가는 말처럼 자기 집안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아버지의 이상한 부재가 느껴졌던 녀석이었다. 녀석의 고백은 몇 줄 되지 않았다, 만일 질문을 한다면 그 말에 무수한 물음표를 달았겠지만 우리는 그저 듣고 말았다. 모든 걸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심전심, 녀석이 하듯 그런 식으로 밖에 나도 내 문제를 이야기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쉽게 말하지>는 이렇게 강변에 나란히 앉아 무심히 털어놓는 자기 이야기 같다. 그래서 더 가슴 뭉클하다. 그래서 더 다정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네 명의 작가 옆에 나란히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보니 안개 자욱한 강변에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비춰오고 있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쉽게 말하지> 이 네 분 덕에 오늘을 또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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