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없는 글쓰기'를 위하여

- 하루에 다만 한 문장이라도

by 누보로망



nick-morrison-FHnnjk1Yj7Y-unsplash.jpg Unsplash의 Nick Morrison (https://unsplash.com/ko/@blazphoto?utm_source=unsplash&utm_medium=referral)




“에이, 내가 무슨 글쓰기야.”




이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변명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뭔가 거창한 주제가 있어야 하고, 깊은 생각이나 감정이 따라와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하루에도 수십 번의 글쓰기를 행하고 있다.

전화보다도 자주 쓰는 카톡이나 문자 메시지 작성이 모두 글쓰기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글쓰기는 생각보다 별 게 아니다.

글을 쓴다는 건 거창한 창작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는 행위에 가깝다.




예쁘게 꾸민 다이어리를 열어도 좋고, 그냥 손에 있는 휴대폰 메모장을 켜도 좋다. 또 지금 눈앞에 있는 이면지 뒷면에라도 몇 글자를 적어도 좋다.



그게 바로 별거 없는 글쓰기의 시작이다.


모양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마음, 그게 쓰기의 출발점이다.









글을 쓰면 사람은 자신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그날 있었던 일, 느낀 감정, 스치듯이 들었던 말 한마디가 어떻게 내 마음을 건드렸는지를 정리하다 보면, 자신이 하루를 그냥 통과한 게 아니라 ‘살아냈다’는 감각이 생긴다.


이처럼 글은 삶의 증거를 남기는 가장 조용한 방식이다.


재밌는 점은 조용하게 멈춰 있는 글자가 담은 내용은 쓰는 사람에 따라 시끄러운 굉음일 때도 있고, 침묵에 가까울 만큼 고요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더 재밌는 점은, 같은 사람이어도 그날의 기분, 순간의 감정, 그때의 태도에 따라서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른 문장으로 적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쓰기는 순간의 기억을 붙잡는 일이고, 붙잡은 기억은 훗날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잘 쓰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쓴다는 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완벽하게 표현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어색한 문장이 더 큰 진심을 담는다.





“오늘은 괜히 울컥했다.”

“퇴근길 하늘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이유가 없어도, 맥락이 없어도, 내용이 없어도 좋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글로써 담고자 하는 건, 미문(美文)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이다.


많은 사람이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들었다가도 놓게 되는 이유는,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다.

삶의 사소한 순간을 느끼고, 그 감각을 문장으로 옮겨보는 일.


그게 '별거 없는 글쓰기'의 사실상 전부다.







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관찰자가 된다.

그들은 하늘의 빛깔을 유심히 보고, 길가의 나무 그림자에도 잠시 멈춘다.

글로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이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의 하루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촘촘하다.

일상의 결을 깊이 있게 만져보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쓰면 마음의 속도가 느려진다.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가라앉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을, 종이 위에서는 얼마든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그건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누구에게도 입 밖으로 꺼내어서 말하지 못한 문장을 적는 순간, 그 마음은 더이상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그래서 별거 없는 글쓰기는 가장 가성비 좋은 치유이자 고해성사의 역할도 해준다.




물론 어떤 날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땐 그냥 이렇게 적어도 된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 한 줄조차 기록이다.

그건 무기력의 표시가 아니다. 이미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하루의 감정을 기록하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생각의 먼지를 털고, 마음의 방향을 다시 세운다.

그러나 이 무게에 짓눌리지 말자.

그러면 켜놓은 백지 앞에서 또다시 무기력해져서 단 한글자도 적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이건 거창한 창작이 아니라, 삶을 조용히 정리하는 루틴이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써보자. 그게 무엇이든.




글을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문장들이 쌓여 어느새 두툼한 기록이 되었을 때, 그 안에는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변화가 들어 있다.

처음엔 무심히 썼던 문장이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건 결국, 글이 시간을 품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은 매일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이다.

오늘의 마음을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일. 그 편지가 쌓이면, 그건 하나의 인생 서랍이 된다.

때로는 꺼내 읽으며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하겠지만, 그 서랍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자신을 잃지 않는다.



별거 없는 글쓰기의 장점은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히려 별거 없는 글쓰기는 그런 전장 속에서 잠시나마 몸을 숨길 수 있는 대피소가 되어줄 것이다.


누가 더 잘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꾸준히, 오래 쓰느냐가 중요하다.

잘 쓴 글은 기술로 완성되지만, 꾸준한 글은 엉덩이로, 그리고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꾸준함은 재능을 이긴다.

그래서 하루에 한 문장을 쓰는 사람은, 이미 글쓰기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은 너무 빨라지고, 생각할 틈은 점점 줄어든다.

그럴수록 글을 쓰는 시간은 더 필요하다.


짧은 문장 하나가, 바쁜 하루 속에서 마음을 붙잡아준다.


그 문장을 써내기 위해서 잠시 잠깐, 세상의 시간을 멈추고 나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 감정을 살펴보고 세상이 주는 피상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 생각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가 길었든, 짧았든, 그 끝에 문장을 한 줄 남겨보자.




그 문장이 오늘의 자신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문장들이 모이면,

당신의 삶은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자.




“내가 무슨 글이야.”



그 말을 이제 내려놓자.




글쓰기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독점하는 취미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기록이다.


오늘의 문장을 남기는 일,

그건 당신이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지금 당장 당신의 메모장에 이렇게 써도 좋다.





“이 글 졸라 형편없네.”





그렇게라도 썼다면, 당신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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