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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pr 26. 2024

빵 배달

이웃 소통

빵배달.

분명 쉬려고 방에 들어갔고 얼마 전까지도 익숙한 침대에 누워 티브이 보기를 했다. 쇼프로를 히히거리며 보았다. 어둡게 하려고 열린 커튼을 더쳤다. 몸이 피곤해지며 까무룩 잠이 드려했다.


왜 그랬을까. 벌써 잊었다. 무슨 맘으론 가 일어나 부엌으로 나왔다. 환한 시간. 오전 11시에서 12시가 되어가는 시간. 부엌에 가스레인지 옆 싱크대 선반 위 식힘망에서 식고 있는 빵들. 맞다 빵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잠들려고 하는 몸을 일으켜 나왔다.

큰 지퍼백에 4개씩, 4개씩, 그리고 작은 지퍼백에 두 개를 담았다. 머리가 무겁고 싶지 않았다. 유치원 다녀온 아이가 먹을 것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나눠드리자.


중간 크기. 지퍼백을 꺼내고 빵칼로 썰기 시작했다. 두 개씩 한 지퍼팩에 담았다. 드릴 때 사용하려고 산 크라프트 봉투가 생각났다. 사용하려고 산거 먼저 쓰자에 생각이 이르러 그 종이를 꺼냈다. 이미 지퍼팩에 담은 건 지퍼팩에, 나머지는 종이봉투에 담았다. 이렇게 지퍼팩과 종이봉투에 각각 두 개씩, 총 4개의 포장을 했다.


우선 아래층 연극 아주머니 집에 한 개, 오늘 아침 작은 아이 유치원 등원 버스에서 만난 우리 동 우리 라인 9층에 하나,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나고 요즘은 봐도 모른다는 말의 인시말을 나눈 9층 혹은 7층 아주머니에게 인사드리며 하나, 우리 앞 집에 하나. 이렇게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봉투 4개를 들고나갔다.


엘리베이터로 9층으로 먼저 갔다. 두 집중 어디가 오늘 아침에 만난 같은 유치원 다니는 엄마집일까? 문에 '아이가 있으니 노크해 주세요'  머그컵 크기의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 집이다. 낙, 낙.  낙, 낙.  낙, 낙, 낙.  안 나온다. 벨을 누르고 싶지만 실례다. 누를 수가 없다.
앞집을 눌렀다. 아저씨가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 만난 얘기를 하며 오늘 만들어서 드리면서 인사하러 왔다고 말했다. 문에 아줌마, 아저씨, 중, 고생 정도로 다 큰 딸 둘과 찍은 네 컷 사진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봤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인사하고 얘기 나눈 분이 아니신 거 같았다. 생김새도 나이대도 달랐다. 앞집 못 만났으니 여기에 드려도 되겠다, 싶어 드리고 왔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좋아서 만들고 드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들으니 기분 좋았다. 일상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럼 7층이겠다 싶어 7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이번엔 양쪽 중 어딜까. 한 곳을 눌렀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 내가 누른 집으로 아저씨와 아줌마가 각각 자전거 한 대씩을 끌고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줌마는 아니지만 자전거 타면서 부부가 같이 타는 걸 몇 번 보았었고 우리 동 자전거 거치대에서 두 분이 자전거를 붙여 한 거치대에 세워두는 모습을 보았었다. 참 잉꼬부부 같다 생각했던 분들이셨다. 아저씨는 먼저 들어갔고 나와 인사 나누는 아주머니 자전거도 갖고 들어가셨다. 아주머니께 인사하면서 오늘 만들었다고 지퍼팩 봉투 하나를 드렸다.
생활자전거만 타서 자전거에 잘 몰랐다. 관심도 타는데만 있고 자전거에는 그다지 관심두지 않았었다. 더 좋은 비싼 자전거의 필요성을 몰랐다. 내년이면 작은 아이 유치원 등하원을 안 하게 되면 나만 타는 자전거를 사서 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뭘 사면 좋을지 알고 싶었고 어떤 자전거가 좋은지 물었다. 사이클만 타서 자전거를 잘 모르신다고 했다. 헬멧이랑 안경을 물었다. 안경은 오 클릭이 좋다고 했다. 잊지 않으려고, 정말 생각 생각 안 하면 금세 1분 만에 그 이름이 생각 안 나니까, 오! 클릭하며 말하고 기억하며 내려왔다. 좋은 이웃을 만났고 좋은 대화를 나눴고 좋은 정보를 덤으로 얻었다.


봉투 두 개가 남았다.

6층으로 내려와 벨을 눌렀다. 사람이 없다. 앞  벨을 눌렀다. 여기도 없다. 5층으로 내려왔다. 우리 위층 노부부가 사는 집. 조용한 집. 위층이 조용한 것도 복이다고 생각하 게 해주신 분들의 집. 이 시간에 안 계셨다. 앞집 벨을 눌렀다.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난다. 누가 왔다. 누구세요. 네 아래층이에요. 문이 열린다.

- 몇 호예요. 403호예요?

- 404호예요. 오늘 만들어서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아직 온기가 있어 따뜻할 거예요. 위에 크랜베리랑 호두 나온 부분은 타서 좀 쓸 수 있는데 속살은 촉촉할 거예요.

- 집에 들어오라고 하고 싶은데 손님이 있어서. 다음에 보면 인사해요.

- 네 엘리베이터에서 오며 가며 뵌 거 같아요. 안녕히 계세요.^^


3개를 나눠 드리고 하나 남았다. 계단으로 3층으로 내려갔다. 연극 아주머니 집 벨을 눌렀다. 아래에서 계단으로 젊고 멋스럽게 잘 차려입은 아저씨가 올라와 앞 집으로 들어갔다. 연극 아주머니 집은 인기척이 없다. 들어가는 걸 봐서 사람 있는 걸 안 앞 집 벨을 눌렀다. 방금 들어간 아저씨가 문을 열었다. 오늘 만든 빵이에요. 하니 고개로 앞집을 가리켰다. 내가 드리려고 벨 누르고 기다린 걸 보고서 그걸 얘기하시는 거였다. 안 계셔서 따뜻할 때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라며 말하니 옅게 웃으며 받아주셨다.


나눠 드리려고 챙겨간 4개의 포장 봉투를 다 나눠드리고 빈 손이 되었다. 손도 마음도 가벼웠다. 집에 돌아와 부엌 싱크대 선반이 비워진 게 보였다. 두 개의 덩어리 빵과 아이가 만든 작은 빵들만 지퍼팩 하나에 담겨 있는 정리된 부엌이 보였다.


홀가분했다. 재밌게 만들고, 아이 먹을 양으로 조금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나눠주고서 남은 게 없어서.

만드는 재미와 만들고서 쌓이지 않아 부담되지 않은 게 좋았다. 그러기 위해 나눠주며 이웃을 만나고 인사하며 대화하고 얼굴을 알게 됐다. 몇 호에 누가 사는지을 알았고 내가 몇 호에 사는 지를 알렸다. 서로 알게 되고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취미가 편안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웃사람들을 교우 있는 관계로 만들어주었다.

베이킹이라는 취미가 즐거워서 좋고 기쁨을 알게 해 주어 고마운데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과의 관계까지 좋은 영향을 만들어 주고 있다. 즐거운 취미가 좋은 취미로까지 퍼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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