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의미를 창조했나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개정판)- 빅터 프랭클
이 책이 19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방송국 기자들은 빅터 프랭클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랭클 박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 건 아니며, 현시대의 불행을 기록한 책이 이렇게나 많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절박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이 책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용소에서 경험한 기록을 통해 그는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구체적 예시를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당시 수용소로 끌려가던 1500명의 사람들은 기차의 종착역이 군수 공장이길 간절히 빌었습니다. 강제 노역이 죽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 밖을 내다보던 누군가가 아우슈비츠라고 적힌 팻말을 발견하고 울부짖기 시작하자 그들은 모두 가스실을 떠올렸습니다.
열차 문이 열리고 머리를 박박 깎은 줄무늬 수의 차림의 사람들이 차량 안으로 들어왔을 때 프랭클 박사는 애써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주 신수가 훤하군. 괜찮은 사람들처럼 보여. 심지어 웃고 있잖아. 누가 알아. 내가 저 사람들처럼 혜택 받는 처지에 있게 될지.’
정신 의학에 '집행 유예 망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 집행 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진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최후가 최악은 아닐 거라 믿으며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립니다.
축사 같은 곳으로 끌려간 프랭클 박사는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한 듯 보이는 어느 고참 수감자에게 외투 안에 숨겨둔 과학책 원고를 보여주며 이 연구 기록이 세상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털어놓았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들을 상대방도 중요하게 여겨줄 거라 믿었습니다.
고참 수감자는 마치 그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웃음은 곧 경멸과 비웃음으로 바뀌더니 끔찍한 비난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목욕탕 대기실로 쫓겨 들어가 온몸의 털이 전부 밀린 채 완벽한 알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로 분류되어 한 줄로 나란히 선 채 장교의 손짓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프랭클 박사의 차례가 가까워졌을 때 누군가 뒤에서 속삭였습니다. 오른쪽은 작업실이고 왼쪽은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가는 특별 수용소행이라고. 프랭클 박사는 최대한 건강하게 보이려고 애썼고 간신히 오른쪽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는 비누 한 조각을 받은 채 목욕탕이라고 적힌 왼쪽 문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화장되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박탈당하고 여태 쌓아 올린 상식이 부정당하는 순간, 그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샤워를 하면서 옆 사람과 애써 농담을 주고받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샤워기에서는 가스가 아니라 물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집니다.
기껏해야 2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건물에 1500명이 구겨져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술에 의지하면서까지 생을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수감자를 다른 수용소로 이송시킨다는 공식 발표가 나면 사람들은 누가 더 열악한 한경으로 끌려갈지를 두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친구를 제외시키려고 기꺼이 타인의 번호를 집어넣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놀라운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교과서에서 배운 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이를 닦지 못하고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잇몸은 건강했고 셔츠 한 벌로 반년을 버티며 손 씻을 물조차 없어도 상처가 곪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사회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던 사람은 살을 맞대고 누운 앞사람의 코 고는 소리에도 잠이 깨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응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반복되는 폭력에 익숙해지면 사람은 어느 순간 자극에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프랭클 박사도 이런 감정 결핍을 느꼈습니다.
하루는 수용소에서 친구가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쥐고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신발을 신지 못해 눈 위에서 맨발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프랭클 박사는 호주머니 속 작은 빵 조각을 꺼내 게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환자 한 명이 숨을 거두면 수감자들은 시신이 가진 옷가지와 신발을 서둘러 챙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외투를 들고 갔고 누군가는 진짜 구두끈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하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는 열두 살짜리 소년이 동상에 걸려 까맣게 썩은 발가락을 집게로 떼어내는 장면을 봐도 동정심조차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수감자들은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끔찍한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감자들은 주변 환경과 자신의 마음을 분리시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리면서도 사람들은 이런 것을 매우 궁금해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결말은 어떻게 될까?
당시 가장 절망적인 것은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앞장서서 나서고 결정을 내리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운명이 자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사를 가르는 긴박한 순간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행동하는 대신 운명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인생을 방치했습니다.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정신 의학자 노릇이나 의사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19, 104번이라는 숫자로 불렸으며 하루 종일 철로에서 땅을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쓸 수 없도록 제작된 ‘상여 배급표’를 몇 주에 걸쳐 모아 한 달간 먹을 수프를 샀습니다.
수프 열 두 그릇은 담배 여섯 개비와 바꿀 수 있었는데 담배를 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오직 대장과 생을 포기한 자들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살아있는 시간을 즐기고자 담배를 피웠습니다.
어느 날 동료가 수프를 포기하고 담배를 피기 시작하면 프랭클 박사는 그가 얼마 가지 않아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삶은 고통이 끊임없이 지속되다 결국 무감각해지고 마는 무가치한 삶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불행해집니다. 그들은 세상을 거부하며 우울해하고 무기력함에 빠져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 어떤 것에도 간섭받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누워 있는 것입니다.
프랭클 박사도 원한다면 언제든 고압 철조망에 몸을 던져 비루한 생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기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없는 걸까요?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잃은 대신 하나의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모든 시련에서 내가 어떤 의미를 창조할 수 있을까?
고통, 죽음, 죄. 이 모든 비극에도 삶에 의미를 갖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인간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창조력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시련에서 당신은 어떤 의미를 창조했나요?"
- 고든 W. 올포트의 추천의 글-
저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랭클 박사는 가끔 환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환자의 대답 속에서 프랭클 박사는 정신과 치료에 중요하게 적용될 어떤 지침들을 발견했습니다. 조각난 삶의 조각을 엮어 확고한 형태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책임지는 것. 그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실존적 분석' 즉 로고테라피의 목표입니다.
오늘날 유럽은 실존적 분석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고통의 원인을 서로 모순되는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 불안에서 찾았다면, 빅터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거부하지 않고 그 위에 자신의 것을 쌓아 올리는 것. 자기 것과는 다른 실존적 치료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유대를 맺으며 공동보조를 해 나가는 것. 이런 관대함이 프랭클 이론의 특징입니다.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잃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우스꽝스러운 몸뚱이와 자신의 생명 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절망을 마주할 때 인간은 운명에 대해 냉정하고 초연한 태도로 의문을 갖고 구원을 찾습니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남은 삶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실존주의의 중심 주제를 알 수 있습니다. 산다는 건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의미를 찾아낸다면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랭클 박사는 니체의 말을 인용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고든 w 올포트는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이 책에는 인간 문제의 가장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둔 한 사람의 극적인 경험담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빅터 프랭클
빈 의과 대학의 신경 전신과 교수이자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그는 프로이트 정신 분석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은 정신 요법 제3 학파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년 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다.
1924년 국제 심리분석학회 잡지에 글을 발표한 이후 그가 발표한 27권의 저서는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