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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리 Apr 18. 2023

나는 취업준비 대신 배낭여행을 택했다

내가 배낭여행을 떠나는 이유

어린 시절 어린이날, 생일, 휴가철이 되면 불만으로 가득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놀이동산, 장난감 가게, 공연장 등 그 당시 어린 마음으로 정말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한 곳이었으며 자고 싶은 곳은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 호텔이었다. 그렇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려주듯 젊은 시절 암벽등반을 하며 만나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었을 만큼 자연을 사랑하는 부모님 덕분에 나와 동생은 늘 우리나라 5대 계곡, 5대 산, 바다 등 나의 환상과 정말 반대인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올라가기 싫다고 울면서 산을 타고, 폭포가 보이는 곳까지 걷기 싫다고 차에 혼자 숨어 가족들을 기다렸으며, 갯벌에 들어가면 손과 발이 더러워진다고 나 혼자 하루 종일 밖에 있겠다고 짜증을 부리며 밤에는 흙이 그대로 느껴지는 텐트에서 울상을 하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자연과 친해질 것 같이 않았던 내가 심장이 터질 듯이 올라가 정상에서 먹는 꿀 맛 같은 아이스크림의 맛을 본 날, 물이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만나 하루 종일구경하던 날, 딱딱한 바닥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며 잠이 들 수 있는 날들이 더해져서 나는 어느새 내가 먼저 자연에 뛰어들 정도로 성장했다.


원래 달콤한 것은 오래 맛볼 수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 모든 중, 고등학생이 그렇듯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린 시절의 자유로움을 벗어나 주말, 방학 등 모든 휴가를 학교, 학원에 바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고3 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었던 나는 대학도 성적에 맞춰 학과도 흔히들 말하는 힘들지만 취업은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여 진학하였다. 그렇게 입학한 학교라서 그런가 그 당시 나는 학과에도 대학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학교생활 내내 알바, 취미생활, 친구들과의 유흥이 더 중점이 되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던가 어느새 4학년이 되었고 취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덜컥 겁이 났다.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 와중에 나는 그냥 말하는 감자일 뿐인데라는 드립생각, 전공은 정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싫었으며 그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으며 정말 여러 생각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내가 느끼던 나의 상황은 그냥 한마디로 노답이었다. 이 답이 없는 상황에서 회피하고 싶어서일까?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덜컥 휴학서를 제출하였다.


막상 휴학을 하고 나니 생각 외로 더 좋았다. 매일 왕복 3시간씩 가던 통학길도 과제도 없이 터치하는 사람도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실컷 읽다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거의 뭐 이렇게 본능에 충실하게 보낸 시간은 신생아 이후로 처음이지 않나? 아니 그 이상이었다. 나는 거의 유인원이 따로 없었다. 아니 유인원이 더 괜찮았을지도 그들의 식사는 자신 스스로 챙겨 먹지 않나? 나는 식사도 배달을 시켜 먹거나 가족들이 차려주면 숟가락만 얹었으니 말을 다했다.    


그렇게 평생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정말 최소한의 인간의 본능이 나를 붙잡았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동기들처럼 토익 점수를 더 올리고 준비하고, 여러 자격증 등 스펙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대학교 3년 내내 놀았으니 눈 딱 감고 해 보자.라는 결심을 한 것과 무섭게 또 "자 어디에 입사하고 싶니?" "아니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래?"라는 지난 세월 내내 피했던 질문이내 발목을 잡았다. 이 질문이 항상 문제였다. 고3 때도 대학입학해서도 4학년 때도 이 질문에 대답을 못해서 휴학을 했는데 또다시 이 질문이니 말이다. 여기서 더 붙여" 학과가 싫어?" 그럼 "다른 일을 하면 되잖아?"다른 일?" "그럼 복수전공을 지금부터 해?" "그러면 무엇을 전공하고 싶은데?"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질문 뫼비우스의 띠의 갇힌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 넘쳐서 문제라는데 나는 왜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며 그냥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아무 곳이나 일을 해라 하는데 그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빙빙 제자리를 돌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암흑 속에서 또 회피하듯 유튜브를 보았고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나를 한 영상으로 이끌었다. 그 영상은 여행 유튜버 여락이들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담은 영상이었다. 그 순간 ‘아 나도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배낭 하나만 매고 캠핑을 했던 것처럼 떠나보자. 갑자기 죽어있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럼 그때처럼 행복하지 않을까? 나도 넓은 세상에서 멋진 경험을 하면 아무 의미 없이 사는 인생에서 그들처럼 깨달음을 얻고 오지 않을까?(추가로 SNS에 멋진 사진도 올리고 말이다.라는 생각) 하고 말이다.     


그렇게 휴학 때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고 정말 평일에는 영어 학원 알바 주말에는 레스토랑알바 남는 시간에 단기알바까지 하면서 미친 듯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첫 도착지의 보딩패스

그 당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시작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비행기표값인 25만 원이 통장에 찍히자마자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첫 비행기를 끊었다. 왕복 말고 편도로 말이다. 이때 짜릿함이란 벌써 어린 시절에 읽었던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출국날짜가 한 달을 채 남기고 있었다.


여행을 처음 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여행이 한 달쯤 남았으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고 이때쯤 되면 정말 설레서 미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시간이 다가올수록 너무 떠나기가 싫었다. 내가 무슨 고생을 하려고 이 비행기표를 끊었지 그냥 이 돈으로 쇼핑하며 한국에 편하게 집에서 있으면 너무 좋을 텐데 하고. 주변 친구들도 어른들도 말리는데 내가 너무 무모한 생각을 하고 있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몰려왔으며 이로 인해 여행계획이며 준비하지 못한 것이 수두룩 빽빽이 었다.      


그때쯤 나는 살짝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아 내가 겁을 먹었구나. 나를 보호해 주는 것도 안정적인 생활도 다 보내고 내 손으로 다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마치 어렸을 때 아빠 손을 잡고 산을 오르기 싫다고 때를 썼던 그때처럼. 이 두려움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던 사이 또 이주가 지났고 그때까지도 나는 지금이라도 가지 않는다고 할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떠벌렸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일주일을 보냈으며,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여행계획은 커녕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본적인 정보인 유심가격, 환전소 등 하나도 챙기지 않았고 첫 국가의 숙소예약 기차예약, 유로(심지어 러시아 화폐가 따로 있는대도 말이다.) 등 정말 최소한의 것만 챙기고 비행기 타기 4시간 전까지 달랑 배낭 하나에 짐을 쌓다. 그렇게 나는 홀린 듯이 비행기에 앉아있었고 나의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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