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원에는 화분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오픈할 때 본사에서 준 야자 종류이고, 또 하나는 우리 집에서 옮겨다 놓은 벤자민 고무나무이다.
우리 학원이 20년이 됐으니 둘 다 그 이상은 나이 먹었을 거다.
식물을 볼 때마다 느낀다.
'식물도 수명이 있나?'
분명 겨울에 죽은 듯했는데 봄이 되면 다시 아기로 파릇파릇 소생하니 말이다.
심지어 노목까지도...
그런데 그건 저 대자연의 혜택을 받고 자라는 식물들만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실내 식물들은 늘 똑같은 모습으로 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벤자민이 노쇠해 보이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니 노랗게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을 잘 안 줘서 그런가?
내 경험상 식물은 너무 신경 써서 자주 물을 주면 대부분 죽어 버렸다.
'과보호는 식물한테도 독이 돼'
내 지론대로 물을 잘 안 준 것은 사실이다.
보기에 생기가 없어 보일 때에서야 '아차' 하고 물을 흠뻑 주면 다시 윤기가 흐르며 생생하게 회복되었다.
적당하고 알맞게 보호해줘야 하는 것은 식물한테도 해당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벤자민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할 때 직접 사 온 것이어서 더 애착이 가기도 하지만 나의 게으름에도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너무 잘 자라줘서 속 안 썩이는 자식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보니 노년까지는 아니지만 중장년은 되어 보이는 게 아닌가,
풍성했던 초록 잎이 하나 둘 빛이 바래더니 책장까지 쭉 뻗은 가지를 흔들면 노란 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요즘은 학원에 나가면 제법 수북이 떨어진 잎부터 쓸어야 한다.
'전에도 그랬나?'
'이게 상록수 아닌가?'
생각해 보면 물을 언제 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깟 물 주는 일에 왜 이렇게 소홀한 지 변명을 하자면
첫째는 게을러서요, 둘째는 번거로워서이다.
한 번 물 주기로 맘먹으면 물뿌리개를 들고 화장실까지 두 번은 왕복해야 한다.
너무 오랜만에 줘서 충분히 줘야지 하고 세 번 가면 물이 넘쳐 또 대걸레를 가지러 가야 한다.
또 욕심을 부리고 물을 넘치게 받아오면 복도에 줄줄 흘리고 내 발도 젖는다.
그럴 때는 살짝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무튼 요즘은 벤자민이 션찮아 보여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코로나로 학원문을 3차, 4차까지 닫았으니 많은 날들 동안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었을 거다.
식물도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잘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귀찮아했고 무관심했던 내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하나 갖고 싶어요"
그날도 시든 잎을 떼내고 있는데
7살 민준이가 나뭇잎을 하나 따 달라고 한다.
노란 잎을 하나 주니
"초록 잎도 가지면 안 돼요?"
굳이 싱싱한 잎을 따고 싶다고 조른다.
잠깐 가지고 놀다 버릴게 뻔한데 그렇지 않아도 귀한 초록 잎을 따 달라고 하니 얄밉기도 하다.
"따면 피나"
"나뭇잎도 피나요?"
"응, 하얀 피"
호기심과 겁먹은 얼굴이 잔뜩 긴장한다.
"에이, 거짓말! 보여줘 봐요."
물을 챙겨 주지 않아도 천장까지 무성하게 자라는 가지를 몇 번 가지 쳐 준 적이 있다.
그때마다 진득하게 뿜는 하얀 나무 진이 피 같아서 되도록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
민준이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아 일부러 싱싱한 잎 두 개를 땄다.
금방 하얀 진이 스며 나온다.
"어, 진짜네!"
"또 따 줄까?"
"안 돼요, 안 돼요. 미안해, 미안해 나뭇잎아"
민준이는 금방 울상이 돼서 호호 불어 준다.
민준이는 지난 3월
아직 아기티를 벗지 못한 채 엄마 손에 이끌려 들어오지 않겠다고 출입문에서 버텼었다.
만날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서로 눈만 보고 지냈다.
적응하는데 한참 걸려 애를 먹였던 아이다.
이제 제법 친해져 형들이
'애기야'
라고 부르면
'나 제일 형아야!'
하며 정색을 한다.
하긴 유치원 아기들한테는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엄청 큰 형이겠지.
민준이는 피 나는 나뭇잎을 토닥이다가 뭔가 말하려고 머뭇거린다.
"나 비밀 있어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데."
하며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나 오늘 마스크 살짝 벗은 적 있다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아!
마스크를 벗으면 큰 일 난다고 집에서나 유치원에서 교육받았겠구나!
나뭇잎을 피 흘리게 한 것이 미안한 일곱 살 동심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친구들 얼굴을 눈만 보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무거워진다.
피 흘리는 나뭇잎이 상처 입은 동심을 조금이라도 '회복 '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벤자민을 '회복'시킬 방법을 검색하니 꽃말이 '변덕쟁이'라고 한다.
변덕쟁이야! 오늘 너 큰 일 했으니 칭찬해 줄게 다시 마음먹고 잘 자라렴.